올 것이 왔다. 하지만 가슴이 철렁하기보다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실연의 고통으로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나에게, 국가는 '합법적인 도피처'를 제공해 준 셈이었다.
날짜는 12월 말. 장소는 강원도 춘천의 102보충대였다.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학교 동기들에게는 "휴학하고 시골 내려간다"고 둘러댔고, 부모님께는 "훈련소 앞까지 오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정아 누나에게는... 더욱 철저히 비밀로 했다.
혹시라도 그녀가 알게 되어 훈련소 앞으로 찾아오는 상상.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훈련병들 사이에서 나를 찾는 상상. 그건 영화 속에서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쁜 놈'으로 기억된 채 사라져야 했다.
입대 전날, 학교 앞 허름한 이발소를 찾았다.
"어떻게 깎아줄까?"
"그냥... 군대 갑니다. 시원하게 밀어주세요."
'윙-' 하는 바리캉 소리와 함께 내 20대의 상징이었던 갈색 염색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거울 속에는 낯선 밤톨 하나가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과 함께 그녀와의 추억도, 미련도 다 잘려 나가는 것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날 새벽, 청량리역에서 춘천행 통일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입영열차 안은 묘한 분위기였다. 짧은 머리의 청년들은 침통해했고, 배웅 나온 여자친구들은 훌쩍거렸다. 그들 틈에서 나는 혼자였다. 이어폰을 꽂고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를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창밖의 황량한 겨울 풍경만 바라봤다.
'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잊고 행복해져라. 의사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내가 나오면 넌 이미 아줌마가 되어 있어라.'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자 저주였다.
춘천 102보충대 앞은 인산인해였다.
"자, 장정들은 이제 연병장으로 집합합니다! 부모님, 친구분들과 작별 인사 나누세요!"
조교의 확성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여기저기서 통곡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로 부둥켜안고 놓지 못하는 연인들 틈을 비집고, 나는 도망치듯 위병소를 통과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위병소 철문이 닫히기 직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만에 하나. 텔레파시라도 통했나 싶어서.
하지만 그곳엔 배웅 나온 수많은 인파뿐,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차라리 잘됐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헌 옷 수거함에 사복을 던져 넣듯, 내 스물둘의 사랑을 그곳에 버렸다. 차가운 춘천의 칼바람이 빡빡 깎은 머리를 때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바람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그렇게 나는 이호준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48번 훈련병'이 되었다.
작가후기
네 결국 군대로 보냈습니다.
저도 같은 선택을 했었죠.
군대는 당시의 저에게 가장 좋은 도피처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