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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타 Mar 28. 2022

한 '끗' 차이

『킨』(Kindred)

옥타비아 버틀러(이수현 역, 2020), 『킨』(Kindred), 김영사



줄거리는 간결하다. 다나는 자신의 생일날 남편인 케빈과 함께 이삿짐 정리를 하다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낀다. 그리고 1815년 메릴랜드 주의 어느 숲에서 깨어난다. 1976년 스물여섯인 다나는 그렇게 루퍼스를 만나고 1년 동안 불규칙하게 타임 슬립을 거듭한다. 1815년에서의 며칠은 1976년에서 단 몇 분이다. 루퍼스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다나가 소환되고 그러다 다나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다시 그녀의 세계로 복귀한다. 루퍼스는 노예제가 상식인 미국 남부의 농장주 아들이자 백인이고 다나는 흑인으로 패싱 된다. 19세기 미국 남부의 어느 농장에서 다나는 당연히 노예로 취급된다. 다나가 오간 1년 동안 어린 루퍼스는 어른으로 성장하여 농장주가 된다. 소설은 1976년의 다나가 예고 없이 19세기 초의 메릴랜드에 불시착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사건을 시간 순으로 따라간다.


소설의 제목인 "킨"[Kindred]에서 알 수 있듯 루퍼스와 다나는 혈족이다. 루퍼스는 다나의 조상으로, 다나가 기억하는 족보 속에서 가장 위에 있는 할머니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다. 그러므로 루퍼스가 다나를 소환할 때마다 그를 구하지 않으면 1976년의 다나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다나는 전형적인 미국 남부 농장주의 백인 아들인 루퍼스를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다. 게다가 루퍼스의 세계에서 루퍼스가 다나를 보호해 주지 않으면 다나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그곳에서 흑인의 목숨은 언제나 백인의 결정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다나와 루퍼스는 서로의 목숨을 서로가 각기 쥐고 있는 셈이다. 이 불가피한 상황은 다나와 루퍼스 사이에 피로 연결된 것 이상의 기묘한 관계를 형성케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힘겹다. 읽어 내려가는 내내 괴롭다. 흑인이 짐승 내지 가축으로 취급되는 19세기 초 미국 남부의 농장은 20세기 사람인 다나에게 시종 위험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생존을 위해선 판단은 유보하고 일단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다나는 인간이 얼마나 노예화되기 쉬운지를 끊임없이 느낀다. 이 모순 속에서 다나는 루퍼스를 구해야만 하고 또한 그가 흑인을 인간으로 대할 수 있도록 변화하길 희망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할머니가 무사히 태어나고 끝내에는 자유민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애정과 증오, 주인과 노예, 문명과 야만, 자유와 구속 등 모든 모순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선과 악은 명확하지 않고 경계는 지속적으로 흐려진다.


경계의 불분명성은 루퍼스의 세계에 불시착한 다나의 위치에서 먼저 포착된다. 메릴랜드의 농장에서 다나는 백인의 말을 쓰는 흑인으로 인지된다. 겉모습은 흑인인데 생각하고 말하는 건 백인인 것이다. 게다가 읽고 쓸 줄 아는 교육받은 흑인. 그래서 다나는 흑인과 백인 양쪽 모두에게 이방인이다. 백인이라기에는 겉모습이 흑인스럽고, 흑인이라기에는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이 백인스럽기 때문이다. 백인에게는 위협적이고 흑인에게는 의심스러운 인물이다. 따라서 다나는 루퍼스의 세계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겉돈다. 백인과 흑인 양자 모두에서 배제됨으로써 이중으로 위험에 노출된 다나는 혼란 속에서 양자를 위태롭게 오가며 목숨을 연명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할머니가 될 사람이 무사히 태어나 자유민이 되길 희망하며 버틴다. 그 곁을 무심히 지키는 이가 있으니, 앨리스 곧 다나의 할머니가 될 사람의 어머니다. 


앨리스는 다나와 꼭 닮았다. 자유민의 딸이었으나 루퍼스의 욕망을 거부한 결과 그 집안의 노예가 되고 만다. 루퍼스는 앨리스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앨리스를 소유하고자 하고 그 과정에 폭력이 동원되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이 일방적인 관계가 루퍼스는 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그가 다나를 대하는 방식에도 동일하다. 루퍼스는 앨리스와 다나를 두고 "너희는 사실 한 여자야."(443쪽), "한 사람이었어. 당신과 앨리스는. 반쪽씩 둘이 합쳐서 하나였어."(501쪽)라고 말한다. 그런 루퍼스를 다나는 이해한다. "루퍼스 특유의 파괴적이고 한결같은 사랑"(348쪽)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다나는 말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를 아낀다. 그가 한 짓들, 상식 너머의 행동들을 거듭 용서하고, 루퍼스가 자신을 강간하려는 순간에도 차마 그의 몸에 칼을 박아 넣지 못한다. 심지어 이 일마저 용서하기가 얼마나 쉬운지, 반면 "그를 죽이기는 너무나 어려웠다"(506-7쪽)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꼭 닮은, 다른 세계의 두 사람인 다나와 앨리스를 겹쳐보는 루퍼스를 다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사랑과 증오는 정말 다를까? 사실은 쌍둥이나 도플갱어처럼 닮은 것은 아닐까? 이 둘이 함께 공존하는 애증이라는 단어가 지시하듯 둘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루퍼스는 사랑과 소유를 동일시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에게 폭력과 소유는 사랑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루퍼스에게 다나는 여러 가지 모순이 한 데 엉겨 있는 존재다. 어느 날 갑자가 나타나 목숨을 구해주고 사라진 여자. 흑인인데 백인의 말과 사고를 하는 여자. 자신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줄 것 같지만 돌아서면 예측 불가능한 존재. 자신의 목숨을 구할 유일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죽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는 단 한 사람. 타임 슬립이라는 비밀을 공유한 미지의 존재. 마녀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같기도 하고 연인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여자. 그래서 루퍼스는 다나를 사랑하는 동시에 증오한다. 가지고 싶지만 손아귀에 쥘 수 없기에 끊임없이 욕망한다. 그 사이를 위태롭게 잇는 사람이 앨리스다. 


앨리스는 다나처럼 루퍼스 자신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달아날 수 없다. 자신의 뜻대로 가질 수 있는 여자. 그러나 앨리스도 제멋대로다. 자유를 찾아 언제든 루퍼스 곁을 떠나려 애쓴다. 루퍼스는 그런 앨리스를 어떻게 해서든 붙들어 두려 다 결국 망가뜨리고 만다. 삐뚤어진 사랑. 이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루퍼스를 좋아하지만 그에게 길드는 것은 한사코 거부한 앨리스는 루퍼스를 사랑했을까? 흑인과 백인, 노예와 주인이라는 형식이 두 사람을 망가뜨린 걸까, 아니면 둘은 결국 어떻게 해서든 서로를 상처 입히고 말 관계였을까? 백인 남편인 케빈과 다나의 관계는 결국 20세기이기에 가능했을까? 20세기였다면 루퍼스와 앨리스의 관계도 달랐을까? 평행선을 달리던 두 세계가 마주치고 엉키니 자꾸만 늘어나는 건 물음표뿐이다. 


다나에게 루퍼스는 어떤 존재였나? 다나는 단언했다. 루퍼스가 남동생이나 조상은 될 수 있어도, 애인(연인)이나 주인은 될 수 없다고. 그럼에도 루퍼스의 모든 것을 결국 용서하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 연민일까? 동정일까? 그저 그를 살려야만 해서일까? 인종과 성별, 시대와 역사를 떠나 둘 사이의 관계를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아니면 애초에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언어로 설명하려 했던 것이 무리였던 건 아닐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분명히 있다. 경계가 불분명하고 언제나 모호해져 버리는 어떤 마음이 있다. 한국인들이 정(情)이라 일컫는 것 역시 여기에 속한다. 정이 뭔지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 거기에는 아끼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염려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이 동시에 작용한다. 루퍼스와 다나는 각자 다른 상황 속에서 생존하고자 애썼다. 이 생존하고자 하는 분투가 맞닿았을 때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껴안았다. 삶들이 교차하고 그리하여 연대의 가능성이 열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인종과 성별에 기반한 혐오 범죄는 지금도 여전하다. 아직도 어떤 백인 경찰은 흑인을 과도하게 진압하다 죽이고, 어떤 흑인은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묻지 마 폭력을 행사하며,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칼을 휘두르는 남자가 있다. 혐오와 증오는 아무런 개연성 없이 여기로 저기로 튄다. 어쩌면 버틀러는 그 근거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뭔지 묻고, 그것 곁에 바로 붙어 있는 것을 지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증오는 사랑과 닮아 있으며 한 끗 차이다. 접촉은 폭력을 수반하기 십상이고 그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다.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왼팔을 내어주고 다나는 루퍼스와의 관계를 화해 너머로 이행시켰다. 금기에는 대가가 따르고 사랑은 흔적을 남기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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