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랜드』(Herland)
샬럿 퍼킨스 길먼(권진아 역, 2020), 『허랜드』(Herland), 아르테
길먼의 페미니즘 유토피아는 결벽증적이다. 갈등이나 싸움도,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도, 야하거나 추한 것도, 병들거나 아픈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길먼이 상상한 "허랜드"는 완벽하게 정돈되고 소독되고 계획된, 고도로 문명화된 도시로, 여기서 아름다운 여자들은 견고한 자매애를 바탕으로 건강하고 깨끗하게 산다. 이 (이상하고 수상한) 세계를 지탱하는 축은 거의 종교로 추앙되는 모성이다. 섹슈얼리티가 거세된 세상 속에서 튼튼하고 어여쁜 여자들은 수태고지를 연상시키는 단성생식을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거룩하게 모신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이라는 이 신성한 임무 앞에 "허랜드"의 모든 여자들이 단결한다. 욕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적 결속 속에서 이 여자들의 유일한 목적은 아이를 잘 기르는 것, 그러니까 재생산이다. 『허랜드』 속 유토피아의 과잉된 건전함은 어떤 결함도, 결핍도 용납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 인상은 제법 거북하고 불편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남자 세 명이 지난 2000년간 여자들만 살아왔던 미지의 나라에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좌충우돌. 제프와 테리와 밴은 소문으로만 듣던 여자들의 나라를 직접 탐험하기로 한다. 성공적으로 그 나라에 도착한 세 남자는 상상과는 다른 세계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20세기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 이 나라를 경험하면서 그간 자신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혐오적인지를 각자의 수준에서 깨달아 간다. 소설의 지향점은 분명하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다.' '어쩌면 남성보다 우월한 것이 여성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최소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다.' 뭐, 이런 것. 이 소설이 처음 출판되었던 것이 1915년이고, 미국의 모든 주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것이 1920년이다. 그러니까 『허랜드』는 시대적 요청과 여성 운동 활동가였던 길먼의 소망을 그대로 반영하는 셈이다. 즉 이 소설은 미러링 효과를 통해 남성 독자를 계몽시키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도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보인다.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은 각각 세 가지 유형의 남성을 대표한다. 제프는 여성 혐오자로 마초적인 인물이고, 테리는 여성 숭배자로 순종적인 성향을 보인다. (여성 숭배도 혐오의 한 방식이라는 건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될 테다.) 작중 화자인 밴은 사회학도로 둘 사이의 중간 입장을 취한다. 시종 관찰자의 시각을 유지하며 제프나 테리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제프건 테리건 밴이건 전통적인 여성상과 가부장적 태도를 버리지 못해 허랜드에서 개고생한다. 소설은 이 세 남자의 가부장적 태도를 교정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좀 유별난 건 시간과 공을 들여 이들을 교육시킨 다음 자기 나라의 세 여자와 결혼까지 시킨다는 점이다. 허랜드는 유독 어머니처럼 세 남자를 가르치고 달래고 또 성장시키는 데 집중한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키우고 길러 마침내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장가"까지 보낸다. 마치 어머니의 역할은 당연히 거기까지인 것처럼.
제멋대로인 데다가 천방지축인 세 명의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를 인내심을 가지고 계몽시키기 위해 애쓰는 여자 공동체라니. 그것도 고도의 과학적 발전을 이룩한 사회에서. 이 지점이 21세기를 사는 나로선 납득이 잘 되질 않았다. 게다가 '어머님 됨'에 대한 광적인 집착까지. 이런 점들을 냉소적으로 웃어넘길 수 없는 건, 시종 진지하게 이에 대해 반복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처녀 잉태를 하는 무성의 어머니라는 신성한 존재의 한없이 너른 품에서 안온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 아름다운 여인에게 장가드는 남자에 대한 신화. 아무리 급진적이어도 이 신화로부터 자유롭기는 대단히 어려운가 보다. 시대적 한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소설의 이러한 점들은 실패한 농담처럼 찜찜하고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랜드』는 분명 시사하는 점이 많다. 여자들만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SF적 상상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사고 실험은 현실의 중심축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고 또 기형적으로 왜곡되어 있는지를 폭로한다. 가부장제가 어떤 방식으로 위장하여 특정 성별을 차별하고 억압하는지, 이를 통해 어떤 이익을 획득해 왔는지 또한 드러낸다. 이 때문에 이런저런 꺼림칙한 지점들마저도 끝내는 수용하고 만다. 20세기 초의 이러한 상상들, 그 당시에는 충분히 과감했을 이런 도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허랜드』의 어떤 지점들을 불편해하고 거북해 할 수 있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