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이종산 외 5인(2018),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큐큐
여섯 명의 작가들[이종산 김금희 박상영 임솔아 강화길 김봉곤]이 여섯 편의 고전 작품[「가든 파티」(캐서린 맨스필드) 『더블린 사람들』(제임스 조이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오스카 와일드) 「선원, 빌리 버드」(허먼 멜빌) 『카밀라』(조지프 토머스 셰리든 르 파누) 「은하철도의 밤」(미야자와 겐지)]을 현대의 퀴어 서사로 재해석했다. 저마다 다른 깊이와 맛으로 고전의 잔향을 그려냈다. 그래서인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한동안 책을 손에 쥐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라는 제목도 한몫했지 싶다. 이제는 보기 어려운 한여름 밤의 은하수처럼 아련하고, 사춘기 시절의 치기 어린 열기만큼 뜨겁고 은은한 '첫'사랑의 느낌이 떠올랐다. 그 탓에 여운은 예상보다 진했다.
특히 김금희의 「레이디」와 임솔아의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가 인상 깊었다. 「레이디」는 여러 가지 촉감들로 가득했다. 섬세하고 여려서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데 동시에 다 읽고 나서는 오히려 아주 단단하게 느껴졌다. 그런 한편 소설 속 두 인물의 관계는 쨍한 햇볕에 바짝 말린 이불처럼 보송보송하게 그려지면서 또 입안에서 버석거리는 모래처럼 까끌거렸다. 반짝거리다가도 뾰족하게 날이 서 위태롭다는 감각이 들곤 했다. 그러니까 너를 향한 이 감정을 무엇이라고 호명하는 순간 모든 것이 손 안에서 바스러져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레이디」는 그래서 보내지 못하고 오랫동안 간직한 연애편지 같았다. "레이디"라는 말처럼 미숙하고 또 성숙했던, 장난스럽지만 진지했던 첫사랑에 대한 향수가 짙게 묻은, 편지 말이다.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는 소설 속 이 문장으로 수렴되지 싶다. "내가 도와주니까 좋지?" 소설 속에는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등장한다. 전자는 "언니"이고 후자는 화자로 수프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 "언니"는 화자의 수프 카페 운영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어느 날 불쑥 나타나 활짝 웃으며 화자의 일상에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데 화자는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그렇게 화자를 향한 "언니"의 "선한 폭력"은 아주 평범하고 친절한 말투로 시작된다. "언니"의 배려 없는 선의는 자신의 정상성을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이기적인 자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화자는 "언니"를 연민한다. 왜냐하면 그녀만이 "비정상인" 화자를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언니" 자신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그래서 내게 이 소설은 처절하고 절박하게 읽혔다. 화자는 평생 내가 나임을 거부해야 하는 시간 속에서 살았다. 이미 폭력 속에서 살고 있기에 화자는 어떤 것이 "선한 폭력"인지 판단할 자격을 가진다. 비록 자위에 지나지 않았더라도 자신을 거부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문제 삼고 바로잡고자 했던 "언니"의 행동을 화자는 "선의"라 여긴다. 그러나 고맙지는 않다. 거부하지 않았을 뿐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는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두 사람의 슬픈 초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