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밖에 없네』
김지연 외 6인(2020), 『언니밖에 없네』, 큐큐
"퀴어"가 뭔지는 잘 모른다. "퀴어하다"는 말의 의미나 함의가 뭘 지시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퀴어"라는 외연을 입고 모인 『언니밖에 없네』의 단편들을 읽고 있자면, 어렴풋이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랑이야말로 "퀴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사랑은 언제나 상식과 이해와 일상의 범주 밖에 있으니까. 요상한 것들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요상한 것이 사랑이니까. 누구의, 누구에 대한,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그것은 늘 이상하고 고약하고 또 아름답다. 그러니까, 아주 나이브한 차원에서 모든 사랑은 "퀴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니밖에 없네』를 읽고 들었단 얘기. (나의 빈약한 지식 탓일지도.)
큐큐에서 나온 세 번째 퀴어 단편선 『언니밖에 없네』에는 총 일곱 편의 소설이 수록됐다. 정세랑, 정소연, 조해진의 소설(「아미 오브 퀴어」, 「깃발」, 「가장 큰 행복」)은 미래 시점을, 김지연, 한정현, 조우리, 천희란의 소설(「사랑하는 일」,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 「엘리제를 위하여」, 「숨」)은 현재 시점을 취했다. 전자의 세 편은 재앙으로 인해 재편된 미래가 퀴어와 어떻게 얽힐 수 있는지 엿보게 하고, 후자의 네 편은 지금 여기 퀴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살피게 한다. 미래에 대한 상상이건 현실의 반영이건 퀴어의 사랑과 삶은 조금 애달프고 조금 유치하고 한없이 치열하고 복잡하면서 또 아주 단순하다. 여느 사랑과 다름없고 그러면서 여느 사랑이 그러하듯 유일하다. 그럼에도 "퀴어"의 사랑이 조금 더 각별한 이유는 "퀴어"가 이미 당도한 미래면서 동시에 영원히 오지 않을 오늘이기 때문이다. 『언니밖에 없네』 속 소설들은 이 사이를 배회하는 유령들이 존재했고 존재하며 존재할 것임을 지시한다.
사랑은 이상하고 요상하고 요란한데 또 고요하다. 한순간에 누군가를 나락으로 밀어 넣기도 하고 천상으로 둥실 띄우기도 한다. 어디에도 정답은 없고 계속해서 나를 지워내야 하는 시간들의 연속. 더구나 그 사랑이 "일반적"이거나 "평범"하지 않을 때, 그래서 "정상"이라는 규범에서 소외되고 차별당할 때, 감내해야 할 일은 더 무겁고 되돌아오는 질문들은 더 버겁다. 하여 "퀴어"의 연애담은 웃픈 한편 진중하다.
만약 여자친구가 네가 다른 여자사람과 섹스해도 괜찮다고 말한다면? 네가 다른 여자사람과 자더라도 그게 너를 사랑하는 것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김지연의 「사랑하는 일」의 '은호'는 그래서 고민한다. 친구와 애인 사이를 구분하는 건 섹스뿐인 것 같은데, 그게 없다면 너와 나의 사이는 뭘까? 라고. 한편 한정현의 「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의 주인공은 혼란 속에 있다. 이제는 여자가 된 전남자친구 '이수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더 이상 "남자친구"일 수 없는 이수호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시스젠더 호모섹슈얼인 은호(「사랑하는 일」)와 트랜스젠더 호모섹슈얼인 수호(「나의 아나키스트 여자친구」) 둘 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내'가 '나'로 살면서 '너'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둘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내가 누구고 사랑은 뭔지 물을 수밖에 없다.
또 조우리의 「엘리제를 위하여」에는 촌스럽고 기묘하고 이상한 바(bar)를 욕하면서도 계속해서 찾아가는 레즈들이 등장한다. 조잡한 인테리어, 3만 원짜리 감자튀김과 2만 5천 원짜리 해물떡볶이를 파는 바, 엘리제. 가격은 터무니없고 공간은 구리기만 한데, 거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장소는 비가시의 영역에 남아야만 존재 가치를 획득한다. 바 엘리제는 수익을 창출해야만 지속 가능한 술집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은신처면서 아지트다. 수익을 내기 위해 가시 영역으로 나아가면 실상 그것의 존재 의미는 상실된다. 공간을 지탱하던 "진짜" 존재들은 거기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있지만 있지 않은 곳, 유령 같은 공간으로 엘리제가 남을 때에야 비로소 그 장소는 존재한다. 마치 지구에 있는 수많은 "퀴어들"처럼. 천희란의 「숨」의 '정희'가 품었던, 그래서 평생을 숨기고 살 수밖에 없었던 한 마음처럼. 이성과 합리는 비이성과 비합리가 그늘로 자리해야만 존립할 수 있다.
이 마음들은 조건이 바뀐 미래에도 여전해서, 떠나는 연인을 원망하지 않고(「가장 큰 행복」), 각자의 선택 앞에서 갈등하고 슬퍼하면서도 결국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결정을 하게 한다(「깃발」). 그리하여 더 먼 미래는 애초에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체계(「아미 오브 퀴어」)로 상상될 수 있다.
차별하지 않고 선택을 존중하고 끝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추억을 수호하고 어떻게든 끌어안고 그리하여 계속 사랑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배려와 공감 그리고 인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어느 날 문득 누군가로부터 이 말을 받게 된다. "언니밖에 없네."(202쪽)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사람은 누구보다 외롭게 또 견고하게 버티는 사람이다. 그 버팀은 인정이나 호의가 아니라 그것 그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언니밖에 없네』는 이 자명한 사실을 일곱 빛깔 무지개 색으로 그려낸다. 요상하고 또 아름답게. 사랑이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