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메이커>(The dressmaker)
1951년 호주 던가타. 2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틸리(케이트 윈슬렛)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한 손에는 싱거 미싱을 들고서 이렇게 말한다.
"I'm back to you, bastards."
살인 혐의를 받고 고향에서 내쫓겼던 사생아 소녀가 돌아왔다. 새빨간 립스틱에 모자와 장갑까지 갖춰 입고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틸리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미친년으로 생활하는 엄마 몰리를 씻기고 폐가 같던 집을 청소해 두고서, 자신을 내쳤던 마을 사람들에게 웃으며 권한다. 자신에게 와서 옷을 맞추라고 말이다.
영화는 옷으로 시작해 옷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딩에는 심지어 레드카펫도 깔린다. 왜 옷[dress]일까? 어째서 틸리는 미싱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옷은 시선, 욕망, 그리고 정체성과 연결된다. 나와 네가 보는 눈[시각] 없이 옷은 존재하지 않고,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없이 새로운 디자인의 옷은 탄생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개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없다면 특별한 옷을 입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틸리의 과감하고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드레스는 그래서 위험하다.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그녀의 드레스는 유혹적이다. 시선을 끌고 욕망에 부채질을 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무의식, 특히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은폐하고자 하는 욕망을 건드린다. 틸리의 옷을 탐하던 이들의 끝이 모두 비참하게 끝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가로채고 나면 자신의 못생긴 부분을 감추고 싶어 진다. 이런 방식으로 자극된 욕망은 쉽게 인간의 추악한 면을 유감없이 발휘케 만든다. 저주는 틸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있다. 어떤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탐욕과 위선 말이다. 그러므로 재봉사로서 틸리는 실로 탁월한 무기이자 미끼를 가진 셈이다. 그녀는 이를 이용해 던가타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가리려던 진실을 밝히고 복수에 성공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틸리를 지탱하는 것은 미싱이다. 그리고 미싱이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옷. 오직 이것만이 틸리의 고유성을 지켜준다. 틸리에게도 유혹은 있었다. 잘생긴 청년 테디(리암 헴스워스)의 달콤한 말들, 그러니까 같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버리자는 속삭임에 거의 넘어갈 뻔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주어진 삶은 녹록지 않다. 왜냐하면 그녀는 공주나 왕비가 아니라 요술봉을 휘두르는 마녀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반드시 나쁜 놈들[bastards]을 처치해야만 하는. 그래서 틸리는 기꺼이 연인과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무기로 덫을 놓아 나쁜 놈들을 유인해 모조리 불태워버린다. 영화 <드레스메이커>에서 나쁜 놈들을 잡는 것은 백마 탄 왕자도 아니고, 정의에 불타오르는 아버지도 아니다. 바로 아름다운 옷으로 무장한 미싱을 손에 든 마녀다. 제 손으로 쓰레기를 말끔히 정리한 마녀는 이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