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농담

<돈룩업>(Don't look up)

by 수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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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6개월 14일 후 지구에 혜성이 떨어진다면? 그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인류를 멸망시킬 예정이라면?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까? 영화 <돈룩업>은 이 가정에 대한 아주 있을법한 확률의 현실적인 가설을 진지하게 제시한다.


미시간 주립대 천문학 박사인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어느 날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다. 지도 교수 랜달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축하를 받으며 궤도를 계산하던 도중 그들은 이 혜성이 곧장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악한 두 사람은 곧장 케네디 우주 센터에 이 사실을 알리고, 이들은 지구방위합동본부 부장인 테디 오글소프 박사(롭 모건)에게 연결한다. 테디가 두 사람을 워싱턴으로 소집하여 백악관으로 가지만, 제이니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곧 있을 재선거와 대법관 지명 문제가 코앞에 닥쳐 있기 때문이다. 하여 대통령의 답은 "sit tight and assess."


백악관의 무심한 태도에 결국 랜달과 케이트는 언론을 찾아가지만 매스미디어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시청률이기 때문이지. 공룡들을 멸종시킨 소행성보다 큰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랜달과 케이트의 이야기 역시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한낱 가십거리로 전락한다. 심지어 유명 팝스타의 재결합 소식에 혜성 충돌로 인한 6개월 후 지구 멸망이란 사실은 완전히 묻혀 버린다. 누구도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혜성 충돌 역시 고작 밈의 소재로 소비될 뿐이다. 시간은 흐르고 혜성은 다가오는데 대책은 전무하다. 케이트는 온라인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랜달은 갑분 (한 번 자고 싶은) 섹시한 교수님이 된다. 혜성이 육안으로 보일만큼 가까이 와 있는데도 사람들은 "저스트룩업"(just look up)파와 "돈룩업"(don't look up)파로 나뉘어 싸운다. 지구의 종말도 겨우 권력 게임의 재료일 뿐이라니. 너무 리얼해서 뒷골이 송연해지는데 그럼에도 웃음은 비실비실 흘러나온다.


이 블랙코미디의 백미는 휴대폰 회사 BASH의 CEO인 피터 이셔웰(마크 라이런스)이다. 그는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등등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인물인데, 어딘가 모르게 creepy하다. 사이비 교주스럽기도 하고. (아마도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 어쨌든,)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치 되는 것마냥 지껄인다. 아무런 대책이 생길 것 같지 않은 와중에서도 어찌저찌 대책을 세워서 혜성의 궤도를 바꿀 프로젝트를 짜서 실행까지 하는데, 성공 직전에 중단돼 버리니 그 주범이 피터다. 피터는 특유의 흐리멍텅한 표정으로 그 혜성이 가진 광물의 금전적 가치를 중국을 들먹이며 강조한다. 휴대폰과 컴퓨터 제작에 꼭 필요한 주요 희귀 광물을 중국이 독점하고 있어서 아주 큰 문제인데, "32조 달러"에 달하는 그 광물들이 마침 그 혜성에 있다는 것이다. 기술에 핵심적인 그 광물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까지 합치면 무려 "140조 달러" 가치가 있으므로 혜성의 궤도를 바꾸면 안 된다는 거다. 그리고 피터는 다음과 같이 해맑게 말한다. 혜성에 있는 광물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가난과 기아, 사회적 불공정, 생물 다양성 상실 등 지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것은 곧 "기회"라고. 그리하여 혜성을 30개 조각으로 쪼개 지구에 떨어뜨린다는 (제정신을 상실한) BASH의 프로젝트가 단행된다. (물론 실패한다.)


사리분별 못하는 멍청한 대통령이나 위기를 한낱 SNS 밈으로 만들어버리는 대중보다 더 끔찍한 게 피터다. 그는 빅데이터를 권력 삼아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에만 열중한다. (BASH를 설립한 것도 없는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무해해 보이는 웃음으로 가장 유해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그는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거의 모든 것, 그러니까 정치, 언론, 경제를 자기 마음대로 부린다. 그리고 그것을 "사업"(business)이 아니라 "인류의 진화"(the evolution of the human species)라 믿는다. 몰상식한 맹신이 거대한 자본과 고도의 기술과 만나면 이런 재앙이 생겨나나 싶은데, 그게 그냥 코미디로 웃고 넘길 수가 없어서 등골이 서늘해진다. 우리가 이미 이들이 주도하는 다국적 기업들에 일상을 잠식당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라. (일론 머스크는 화성을 식민지화한다잖아.) 피터는 사람들에게 돈룩업 하라거나 저스트룩업 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나뉘어 싸우도록, 그래서 자신이 바라는 방향대로 흘러가도록 위에서 빙긋이 웃으며 내려다보기만 한다. (그러다 "괜찮다"(fine)는 말만 남기곤 우주선을 타고 도망쳐 버리지.) 지금 우리들은 이렇게 극단적이지 않다고 웃어넘길 수 있나? (아닐 걸?)


수많은 과학자들이 오랜 시간 경고했듯, 지구의 기후는 이미 위험한 상태에 도달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 이상 기후 현상만 봐도 그들의 데이터가 거짓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 기후 위기에 대해 인류는 무얼 했나? 제대로 합의를 한 것이 있긴 한가? 열대우림은 여전히 파괴되고 감당하지 못할 쓰레기는 계속해서 쏟아진다. "친환경"은 마케팅 전략 중 하나고 환경 단체에서는 공장식 축산업의 유해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해변에는 쓰레기가 쌓이고 거북이의 뱃속엔 플라스틱이 가득하지만, 우리는 그저 변함없이 싼 값의 커피를 일회용 컵에 담아 먹고 싶어 한다. 석유 사용량은 줄었으나 전기 사용량은 급수적으로 늘고, 그 전기를 원자력 발전소를 늘리는 것으로 감당하려 하면서도 지진의 가능성은 재고하지 않는다. 빙하는 녹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치솟기만 한다. 근본적인 것은 변화하지 않고 꼼수만 는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책은 모두 광고 카피에 뺏기기 일쑤니, 결코 소비는 줄지 않는다. 자, 그러니, 이제, <돈룩업>이 코미디로만 보이나?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사, "we all gonna die"는 더 이상 대사가 아니다. 우리는 정말 모두 죽을 거라고. (자연재해로 죽는 것도 자연사…에 해당하나?) 이게 우리의 현실이지.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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