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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타 Apr 23. 2022

인간인 척하는 좀비들

「501호의 좀비」

은모든, 「501호의 좀비」, 『릿터』 26



좀비는 따로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좀비가 그냥 좀비면 문제가 없다. 인간인 척, 인간 세상에 스며들어 사는 좀비들이 문제다. 이들은 아주 교묘하게 인간 사회에 스며들어 기생한다. 교활하고 뻔뻔해서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을 떠받들게 만든다. 어리석게도 인간은 이들이 정말로 대단한 인간이라고 착각하여 이들이 잘 살도록 일조한다. 이따금 이들이 본모습을 보일 때 또다시 인간은 멍청하게도 그게 꿈이나 환영인 줄 안다. 비상식적인 상황을 마주하면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라. 아주 잠깐 본 그 장면이야말로 틈 사이로 기어 나온 진실인 줄도 모르고. 


그래서 인간인 척하는 좀비들은 법 바깥에 서서 군림한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 그러니까 이들이 사실은 세상을 엿 먹이고 있는 좀비라는 사실, 또 그들이 법 테두리 위에서 권력을 휘두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이 불의에 대항할 힘이 없다. 이 사람들은 오로지 생존한 자로서의 삶을 근근이 영위할 뿐이다. 좌절하고 체념하고 포기함으로써 일상을 버틴다. 「501호의 좀비」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이 사람들이 인간의 탈을 쓴 좀비를 마침내 드디어 통쾌하게 그들의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 단편은 친족 성폭행에 대한 잔인하고 위법적인 복수극이 아니다. 잘못된 자리를 차지한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재치 있는 해프닝이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 남자 캐릭터들이다. 성준(502호)의 할아버지는 혼외 관계에 지극정성인 인간이었고, 성지(성준의 누나)의 남편은 주식에 돈을 퍼붓다가 말아먹은 한심한 인간이었으며, 한나의 아버지(501호)는 거절조차 제대로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다. 501호에 숨어든 좀비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사람들, 그러니까 성지, 성지의 할머니, 이은(한나의 동생), 한나, 종미는 모두 여자다. 성준도, 한나의 아버지도, 이들에게서 직접 듣고 나서 뒤늦게, 그것도 매우 아주 엄청 뒤늦게 파악한다. 한마디로 뒷북치는 셈이다. 사태 파악도, 뒤처리도 모두 여자들이 한다. 


501호의 남자(한나의 아버지)는 어설프게 도우려다 상황을 곤란하게 만들고, 502호의 남자(성준)는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501호의 좀비는 한나와 이은 자매와 종미, 그리고 옆집 502호의 성지와 할머니를 통해 수습된다. 이 소설 속에서 어그러진 상황의 원인은 남자들의 무능력과 무지에 기인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자는 여자들이다. 왜 그럴까? 왜? 왜? 왜? (누가 대답 좀.) 비단 소설 속만의 상황이 아니라서 우습다. 현실이 더 잔인하리만치 끔찍해서 소설이 한층 더 희극적이다. 세상에는 비극보다 더 비극적인 현실이 널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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