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조우리,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릿터』 24
그냥 무례한 말들이 있다. 아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신경 쓰는 척, 별일 아닌 척, 생각해주는 척일 뿐인 말들. 실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무례함이자 호의와 인정을 대가로 상대를 시험하는 오만함에 불과한 말들. 우리는 종종 이런 말들을 부끄럼 없이 내뱉는다. 그 말들에 상처 입고 수치스러워하는 이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은 제목에서 느껴지듯 레즈비언 커플 이야기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난 은주와 정윤은 10년째 연애 중이며 그중 5년은 동거 중이다. 정윤에게는 동갑내기 불알(?) 여자 친구 4명―지혜, 민지, 수진, 지영―이 있는데, 정윤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와 결혼했고 그중 몇몇은 아이도 있다. 정윤은 이미 이들에게 애인인 은주가 여자라고 커밍아웃을 한 상태다. 이 여자 친구들을 만나 달라는 정윤의 부탁을 은주는 꽤 오랜 시간 애써 외면하고 거절해 오고 있다. 애인의 여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꽤나 거북하기 때문이다. 이 감정은 두 가지 사건에 기인한다. 하나는 민아와, 다른 하나는 수지와.
● 민아
민아는 은주가 행정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도서관에서 만난 친구다. 어려운 시험을 같이 준비하며 의지했던 민아를 은주는 나름 각별한 동료라고 여겼고 자연스레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말했다. 그런데 민아는 은주에게 자신이 결혼한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민아에게 결혼한다는 말을 왜 꺼내지 않았냐는 은주의 채근에 민아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아무래도 너한테는 결혼이란 게 더 복잡하게 느껴질 테니까 중요한 공부 하는데 괜히 심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는 거야." (200쪽)
너의 입장을 특별히 고려해서 그랬다는 민아의 애정 어린 말. 그러나 정말 이것은 정말 은주를 위한 민아의 배려일까? 민아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한 이기심을 애정으로 가장한 무심은 아닐런지. 그래서 은주는 이후로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지 않게 됐다. 왜냐하면 민아의 대답은 자신이 겪게 될 곤란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허울 좋은 거짓말일 뿐이기에. 은주는 민아의 태도가 상대에 대한 진심 어린 호의가 아니라 자기 방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안다. 어쭙잖은 가장(假裝)은 금방 들키기 일쑤.
● 수지
수지는 은주가 대학에서 만나 처음으로 커밍아웃했던 사람이다. 수지 덕분에 은주는 퀴어 이론도 공부하고 여러 행사와 동아리에도 참여하는 등 새로운 활동을 하고 영역을 넓혔다. 그럼에도 은주는 수지에게 커밍아웃한 사실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왜냐하면 수지 역시 아무렇지 않게 은주를 기만했기 때문이다. 수지는 자신의 생각과 이론, 깨달음을 증명하기 위해 은주를 기꺼이 이용하려 했다.
어쩌다 둘이서만 갖게 된 술자리에서 수지는 은주에게 대뜸 연애하자고 말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왜냐고 되묻는 은주의 물음에 수지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말이 있잖아. 여자라서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하게 된 사람이 여자였다고. 그럼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대상이 여자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너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난." (205쪽)
이 말에 수치심을 느낀 은주는 손이 떨리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런 은주에게 수지는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오늘 강좌를 들으면서 생각했어. 사랑도 내 삶의 방식 중 하나니까, 내가 나를 잘 알면 그냥 선택하면 되는 거잖아." (205쪽)
그냥 선택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아주 당연하고 가벼운 대답. 오히려 왜 그럴 수 없느냐고 반문하는 듯한 태연한 얼굴. 은주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다. 반면 수지는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수지의 범주에 은주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즉 수지의 세상에는 자신의 힘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있지 않다.
수지의 말을 듣고 은주는 깨닫는다. 수지는 본래 그런 사람이었고 다만 자신이 오해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그냥 선택하면 된다"는 수지의 말은 참으로 교만하다. 내가 너를 선택했고 너도 나를 선택하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은 수지에게는 자명했지만 은주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은주에게 수지의 말은 모욕적이다. 은주는 이성과 합리 또는 논리와 의지를 벗어나는 영역을 끌어안고 산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 영역을 몸소 체감하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온갖 이론으로 중무장한 수지의 세계는 은주에게 폭력적이다. 은주를 자신의 신념을 실험하고 증명해 보일 기회로 삼은 수지. 수지는 어설픈 신념으로 은주를 기만하고 모욕했다. 아주 무례한 방식으로.
무례함은 계속되고, 또 다른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정윤의 여자 친구인 지영.
● 그리고 지영
은주는 정윤의 설득에 못 이기는 척 결국 정윤의 친구 지혜의 아들 돌잔치에 함께 가기로 한다. 시간을 들여 선물을 고르고 공을 들여 함께 입고 갈 옷을 골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윤의 다른 친구인 지영이 다음과 같은 톡을 보내온 것이다.
내가 오빠한테 너 솔로라고 했어. 오빠가 내일 너한테 자기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장단 좀 맞춰 주면 안 될까? 은주 씨한테도 미리 미안하다고 전해 주고. (209쪽)
미안하다는 지영의 말에 정윤은 지영에게 남편을 데리고 오지 말던지 아니면 지영과 남편 둘 다 오지 말라고 답한다. 이에 지영은 다시 한번 펀치를 날린다.
내가 너 보러 가는 건 아니잖아. 지혜 보러 가는 거지. 우리 오빠도 지혜네 오빠랑 다 얼굴 아는 사인데 그냥 네가 혼자 오면 안 돼? (210쪽)
지영은 아주 쉽게 정윤에게 요구한다. 남편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차마 말하지 못했으니 솔로인 척해 달라고, 애인인 은주를 빼놓고 혼자 오라고, 자기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는 오빠의 장단에 적당히 맞춰달라고. 이렇게 지영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정윤이 수습하게끔 만든다. 그것을 아주 당연한 듯 아무렇지 않게 요청한다. 어째서 지영은 정윤에게 '연기'해 줄 것을 당연한 듯 부탁할까? 자신이 초래한 상황에 대한 수습을 왜 정윤의 희생으로 때우려 하나? 지영은 화살표를 왜 남편이 아니라 정윤에게로 돌렸을까?
지영은 사건의 원인이 정윤에게 있다는 듯이 군다. 정작 사건의 발단이자 원인 제공자인 지영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발을 빼고 모든 사건의 책임을 지영에게 전가한다. 마치 애초에 여자인 애인을 둔 정윤이 잘못이라는 듯이. 은주가 남자였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거라는 듯이. 다섯 명의 여자들 중 다른 것은 정윤 하나니까, 다른 네가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이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식으로. 그러니 지영은 위선적이다. 그리고 정윤이 화가 난 이유는 지영의 거짓말 때문이 아니라 이 호의를 가장한 무례한 가식 때문이다.
● 다시 수지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자리에서 어떻게 '너'를 온전히 이해하겠는가. 이해할 수 있다고 섣불리 확신하는 것이 오히려 자기기만이지 않을까.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사실 그저 자기반성일 듯하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냥 자신의 자리에서 찬찬히 재고해 보는 일 말이다. 그리하여 무례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남길지도 모를 생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러니 인정과 판단을 전제로 허울뿐인 호의를 베푸는 일은 자기 위로에 다름 아니다. 이 사실을 몸소 겪어 왔기에 은주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정색을 한 채로.
나는 그들의 인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특별한 호의도 원하지 않는다. […] 남편은 물론이고 아들마저 떼어 놓고 만나는 여자들끼리의 편한 모임이니 은주 씨도 부담 갖지 말고 오시라는 그런 말들을 고맙다고 느끼지 않는다. (198쪽)
'그들'의 무례함에 지쳐 체념에 드는 은주를 위로하는 사람은 다시 수지다. 수지는 은주와 정윤 두 사람 이름 앞으로 흰 봉투 하나를 보냈다. 당연히 청첩장이라고 예상했던 둘은 봉투를 열어 보고 당황하고 또 탄식한다. 그것은 청첩장이 아니라 정수지의 비혼식 초대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초대장의 봉투에 적힌 정윤과 은주의 이름 사이에는 점이 아니라 작은 하트가 찍혀 있다.
정윤과 은주 단 둘만 나오는 사진은 딱 한 장 밖에 없다. 정윤의 졸업식에서 찍은 사진으로, 이 사진은 수지가 찍었다. 은주는 그 사건이 있은 이후 줄곧 수지를 피해 다녔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수지를 만난 것은 정윤의 졸업식에서였다. 같은 동아리라 정윤과도 친분이 있었던 수지가 정윤의 졸업식에 나타났던 것이다. 거기에서 수지가 굳이 두 사람의 사진을 찍은 것은 어쩌면 사과하고 용서받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자신의 무례했던 말들에 대해서 말이다. 수지는 말로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둘만의 사진을 찍어 주는 것으로 해명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말이다. 초대장 봉투의 수신인에 찍힌 두 사람 이름 사이의 하트만으로도 은주와 정윤은 둘을 그 자체로 수용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은주와 정윤은 이 하트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이해라는 게 별 것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주 미약한 신호 하나만으로도 누군가는 충분히 이해받는다고 느낀다. 그런 한편 아주 사소한 말에도 누군가는 강렬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낀다. 이 차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계속 민아와 지영이 한 실수를 반복할 것이고, 이 세상의 은주들은 상처받고 체념할 것이다. 그러나 수지 같은 존재가 있기에 또 어김없이 낙관해 본다. 나 또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