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
임선우, 「동네 친구」, 『자음과 모음』 45
아까 말한 책 말입니다, 선물로 드리려고 했었어요. 단골손님이셨잖아요. 그래서 책방을 정리했을 때도 남겨두었죠. 그런데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누군가 빌려 갔을 거예요. 책들은 늘 그런 식으로 사라지죠. (40쪽)
소설 속 화자는 우연히 동네 바에서 예전에 단골이었던 책방 주인과 재회한다. 책방 주인은 화자를 알고 있다며 반쯤 취한 상태로 말을 건다. 오십 대 여자인 그녀는 화자가 찾고 있던 『파리 스케치』라는 책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 그 책을 찾아 들여놓았지만 책방을 닫을 때까지 화자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남긴 마지막 말이 위의 인용문이다. 이 짧은 재회를 끝으로 어느 날 없어진 그 책방처럼 그녀도 소설 속에서 사라진다. 단골도, 책방도, 책도 "어느 날" 없어진다. 그것들은 "늘 그런 식으로" 사라진다. 아무런 예고 없이.
동네 친구인 언을 짝사랑하는 화자의 이야기인 「동네 친구」 속에서 유난히 이 재회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책방 주인이 단골인 화자를 제법 긴 시간 동안 기다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화자가 언의 곁에서 계속 기다리기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화자는 언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그와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치길 기다린다. 그러다 책방 주인이 이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된 그 책처럼, 화자 역시 언의 옆에서 "어느 날" 사라진다. "어쩌다 보니" 언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늘 그런 식으로" 기다림은 불면의 밤과 함께 속절없이 다시 시작된다.
욕망은 마침표를 지연시킨다. 이렇게 지연된 시간이 곧 기다림의 시간이다. 대상을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욕망은 추하거나 이상한 맛으로 등장한다. 가령 언의 집 거실에 있는 꽃무늬 벽지라던가, 아니면 크래커 위에 올려진 마요네즈를 바른 초콜렛과 같이. 인스타그램에 올릴 법한 비행기 모양 참(charm)이 달린 예쁜 팔찌 같은 것이 아니라. 그래서 영화 속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길에서 악을 쓰고, 주저앉고, 술에 중독되고, 90번이나 전화를 걸고, 상대에게 총을 겨눴을"(38쪽) 것이다. 소설 속 화자는 그렇게 지랄 발광하는 대신 조용히 언의 거실에 걸려 있던 그의 나체 그림을 가지고 그 집을 나왔다. 그림 뒤의 벽지를 찢고 싶은 충동을 힘겹게 억누른 채. 흰색 실크 벽지 뒤에는 언이 추하다고 불평하던 꽃무늬 벽지가 그대로 있었다.
욕망은 세련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충동을 수반하기에 흉측하고, 가리려 애쓸수록 의지와는 관계없이 비대해진다. 그러니 사랑의 얼굴은 못생겼다. 집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언이 새로 마련한, 그가 가장 아끼는 거라고 화자에게 소개한, 반짝이는 유리잔들이 가지런히 진열된 장식장처럼 예쁘지 않다. 오히려 유리 진열장과 장식장들이 처참하게 깨지고 망가져 난장판이 된 거실의 모습이 사랑의 민낯에 가까울 것이다. 사랑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무참히 박살 난다. 물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려서 "늘 그런 식으로" 마주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박스로 포장된 채 그것은 나의 옷장과 침대로 이동한다. 차마 버릴 수도 없고 포장을 뜯을 용기도 없다. 그러니 마침표는 또 연기되고,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은 계속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