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행사의 대학생 공모전 결과가 나왔다. 다섯 개 카테고리에서 각각 우수작(위너)을 선정하고, 카테고리와 무관하게 가장 좋은 작품을 대상으로 뽑는다. 올해의 대상은 어느 껌 브랜드의 이벤트 전략 기획안으로, 침체 중인 껌 시장에서 브랜드의 판매량을 다시 높일 방법으로 수험생을 등 젊은 세대에게 껌을 씹을 이유를 제시하고 껌 씹는 습관을 만들어갈 전략들을 제안했다. 기획안은 아이디어와 논리에 있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기획서의 디자인은 그 내용을 잘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취업 전 실무 예행연습 차원에서, 또 이력서에 기재할 경력 사항을 갖추기 위해서 많은 대학생들이 공모전을 준비한다. 유명 공모전에 수 천 점의 작품이 응모된다고 하고, 각 작품은 대개 여러 학생이 모여 팀으로 준비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수많은 예비 광고인들의 에너지가 투입되는 장인 셈이다. 바꿔 말하면 광고 분야 취업을 일찍부터 결심한 대학생은 적극적으로 광고 공모전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인턴이나 신입 사원을 뽑을 때 이력서에 빠지지 않는 내용 중에 하나가 공모전 참여 이력이다.
이상적으로 하자면 최소 입선부터 우수상이나 대상 이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모두가 상을 받을 수는 없다 보니 수상 이력은 적지 못 하고 참가 경험만 적어 낸 이력서도 있다. 수상자인 경우 팀작업에서의 기여도를 중점적으로 파악하면 되지만, 공모전에 출품해 봤다는 사실만으로는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취업 지원자는 적어 냈지만 채용할 회사로서는 잣대로 삼기 어려운, 동상이몽의 데이터가 바로 ‘공모전 참여 이력’이다. 따라서 면접관 입장에서는 수상이 아닌 단순 참여 이력은 무시할 수도 있지만, 나는 굳이 정성스레 적어 낸 이력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 않아서 고심 끝에 ‘참여 이력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 냈다. 즉, ‘공모전 실패에 특화된’ 질문이다.
“00 공모전에 참여하셨는데, 수상은 하지 못하신 것 같네요. 같은 공모전 대상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혹시 확인해 보셨나요?” 질문은 그렇게 시작된다. ‘내가 참여했던 공모전에서 어떤 작품이 1위를 차지했는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내 기대는 대개 무너진다. 의외로, 광고 공모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의 당락에만 신경을 썼을 뿐 당선작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원자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니요, 거기까지는…’이라고 말을 흐리거나 '지난 공모전 1등은 봤는데요...'라고 답한다. 그러면 나는 ‘00님이 제출하신 작품과 당선작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셨나 해서요.’라고 질문의 의도를 설명한다. 그러나 애초에 당선작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기에 물어본 사람도 대답할 사람도 머쓱한 상황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취업이든 졸업이든, 무언가 중대한 일을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이 열정으로 가득하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우리는 열정이라는 뜨거운 열기 뒤로 꼭 가야 할 다음 단계를 눈치채지 못한다. 바로 '자기 평가'의 단계다. 지난 공모전의 우수작은 참고자료는 될 수 있지만 '내가 떨어진 이유'가 되지는 못 한다. 공모전을 주최한 회사에서 또한 한정된 인원에게만 기회를 주는 '피드백'을 받지 못하면, 떨어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오직 당선작과의 비교뿐이다. 그 유일한 단서를 확인하지 않고 다음 공모전을 준비한다면, 이번에는 어떤 전략으로 공성전을 펼칠 것인가? 자기 평가를 생략하면 다음 도전도 그저 운에 맡겨야 할 뿐이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영영 모른 채로.
광고인에게, 학생 때 경험할 수 있는 공모전이란 그나마 '우리를 이긴 팀이 대체 어떤 기획서를 들고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현실의 경쟁 PT에서는 1등의 기획서가 공개되지 않는다. 나중에 광고가 방송돼도, PT에 제안된 내용과 정확히 같은지 알 수 없다. 떨어진 이유를 분석하는 일은 그래서 바닥 없는 자기반성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절치부심의 감정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기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얼마 전 경쟁 PT 결과가 도착했다. 떨어졌다. 우리가 2등이라는 설명에 자조했다. "떨어지면 다 2등이지, 뭐." 누군가 내뱉고, 다른 팀원들이 허탈하게 웃는다. 한 광고 카피처럼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세상이 바로 여기다. 이력서에 쓸 수도 없다. 떨어진 이력은 마이너스 이력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빼앗긴 시간만큼의 수익을 채워 넣기 위해 다시 도전해야 하는 일. 그렇기에, 정답을 모르더라도 자기 평가를 거를 수 없다.
이번에는 그렇게 의욕적으로 자기 평가하러 다 같이 술집에 갔다가 푸념만 하게 된 것은 뒷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