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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표 '운수 좋은 날'

내 노트북을 찾아온 불운에도 스트레스받지 않기

by 꽃에서 꽃이 핀다

노트북의 컨트롤 키가 먹통이 됐다. 컨트롤 키가 안 되니 복사도, 붙이기도, 저장도, 전체 선택도, 새 파일 열기도, 그 외 온갖 기능도 하나하나 리본메뉴나 마우스 우측버튼을 눌러서 해야 했다. 작업 시간이 열 배는 더 걸리는 것 같았다. 이런. 며칠 전부터 니은 키가 됐다 안 됐다 하더니.


"니으이 잘 아되더ㅣ 이제 커트롤이 안 먹어요"


팀원들에게 작업 계속 진행을 부탁하고 노트북을 지원팀에 맡겼다. 키 하나만 바꿀 수는 없고 상판을 갈아야 한단다. 그렇게 상판 갈고 오겠다던 노트북은 한 시간 반 뒤에 로그인 잠금이 안 풀리는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지원팀 담당자가 수리 중 비번을 몇 번 잘못 입력했단다. IT 담당자가 원격으로 풀어줘야 하는데 출장 교육을 갔단다. 교육이 끝나기를 기다려 IT담당자에게 연락이 닿았는데 인트라넷이 있는 곳에서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다. 출장지가 멀어서 사무실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안 좋은 상황들이 지들끼리 팀웍이 잘 맞는 거지?


저녁이 되어서야 열리지 않는 노트북과, 벽돌처럼 두꺼운 구형 노트북 하나를 받았다. 기획서에 쓸 폰트도 깔려 있지 않은 순백의 노트북이었다. 게다가 구식 전원 케이블은 쓰다가 안 될 수도 있다며 두 개를 가져가보란다. 노트북 두 개와 전원 케이블 세 개, 마우스를 가방에 담으니 가방도 내 마음도 참 묵직하다. 주말에 마무리해서 보내야 하는 문서를 메일로 받았다. 메일을 보내준 대리님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위로를 건넨다. "팀장님 오늘, 무슨 '운수 좋은 날'인가 봐요." 그 말을 들으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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