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으로서의 꾸준함과 원망으로서의 그것
뭐든 꾸준히 하면 이루게 된다.
꾸준함이 답이다.
꾸준히 하다보면...
처음부터 이 말을 믿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요즘은 꾸준히 하지 못하고
슬며시 내려둔 여러 일을 돌아본다.
그렇다고 해서 꾸준히 해왔다면
뭐라도 이뤘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꾸준히 스무 해 넘게 직장을 다녀봤는데
대단한 무엇을 이룬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이 미련한 꾸준함이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삼 십년쯤 노래를 불러온 사람이 있다.
가수인데, 그를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오십 년 넘게 그림을 그린 사람도.
화가지만, 그의 그림을 찾는 사람은 없다.
스무 해쯤 글을 써온 이도 있는데
꾸준함은 그를 작가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수많은 흔한 사연이다.
그들이 충분히 절실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꾸준함이
성공의 필요조건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첫 공모에서, 첫 면접에서, 첫 만남에서
계단을 오른 사람들의 사연이
꾸준함의 신자들을 쓸쓸하게 한다.
자신을 아름답다고 믿는
자기애를 타고났다면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