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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 Nov 06. 2019

[비행일기] 치킨은 역시 한국 치킨


“그래서, 이 오미자차는 어떻게 끓이는 거라고?”

세상에, 이 오빠 오미자차까지 사왔네.나도 한번 안 끓여본 오미자차를 홍콩 오빠가 덜컥 사와서는 무작정 나에게 물어보는 거다.


비즈니스 클래스의 갤리 퍼서 월레스는 어제부터 몇 달 전에 한국 비행 갔을 때 먹어본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며 한국에 도착하면 후라이드 치킨을 좀 시켜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니 오늘은 오미자차다. 어젯밤, 한국 치킨 신봉자 월레스를 시작으로 중간갤리 퍼서 피오나, 뒷갤리 퍼서 인디안 레누카까지 후라이드 치킨의 열풍에 합류하고 싶다고 해 치킨 세 마리를 주문해주었다.


나는 한국 오버나잇 비행을 할 때는 항상 집에 가기 때문에 시간에 쫓긴다. 보통 “미안하지만 나 호텔에 들르지 않고 바로 집에 가야해서~” 라는 말로 종종 있는 주문 부탁을 거절하곤 하는데 월레스 이 오빠, 너무 간절하다. 그래, 그 치킨 꼭 먹어야겠다면 주문해줄게.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호텔 주변에 가까운 치킨집을 검색해 주문 전화를 걸어준다. 언니, 오빠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태국인 사무장 푼펜도 요즘 한국은 뭐가 유명하냐며 물어본다. “겨울철이니까 딸기가 한창 제철이야.” 그리고 홍콩 승무원들이 좋아하는 생생 우동까지 내친 김에 추천해 주었다. 한참 뒤 푼펜이 또 와서는 유명한 김치 브랜드와 김 브랜드를 알려달라고 해 영어로 적어주고 점원에게 보여주기 편하라고 한국말로도 적어주었더니 고맙다며 좋아한다.


다음 날 아침, “후라이드 치킨 어땠어?” 라고 언니 오빠들에게 물어봤더니 이구동성으로 튀김옷이 너무 두껍지 않고 바삭바삭 한게 정말 맛있다며 다음에 한국 비행 오면 또 주문하게 전화번호를 좀 알려달란다. 내가 튀긴 치킨은 아니지만 홍콩, 인도 승무원들이 저리 좋아하니 왠지 국위선양한 것처럼 뿌듯하다. 만면에 미소를 띄며 “그치? 역시 한국 치킨이 맛있지? 치킨은 맥주랑 먹어야 딱인데!” 라고 대답해준다. 사무장 푼펜도 어제 제철이라고 추천해준 딸기가 정말 맛있다며 고맙다고 한다. 비행 중 서비스가 끝난 후에는 생생 우동을 들고와 요리법을 번역해달라고 한다. 월레스는 역시 한국음식 매니아 답다. 4개들이 생생우동을 세 묶음이나 샀다고 자랑중이다.


지금 아시아는 온통 한류 열풍이다. 한국 음식, 한국 드라마, 한국 패션.. 많은 크루들이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외국 크루들이 한국 음식과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기 시작한지는 몇 년 안된 것 같다. 각종 드라마와 한국 가수들을 통해 한국 문화가 서서히 전파되다가 몇년 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아시아권에서 대 히트를 치며 한국 문화의 위상이 더욱 드높아졌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크루들이 '도민준씨'를 외치고 다녔으니 말이다.


내가 맨 처음 회사에 조인했을 때만 해도 한국에 크게 관심 있는 승무원은 드물었던 것 같다. 브리핑 룸에서도 “Lyann from Korea"라고 해도 예전에는 다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면 요즘은 ”Lyann from Korea"라고 하면 “안뇽하쎄요!” “캄사합니다!” 등등 본인들이 아는 한국어를 한마디씩 건네는 것만 봐도 최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또 한국인처럼 생긴 홍콩 승무원이나 대만 승무원에게 “너 정말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 라고 이야기 했을 때 불과 몇 년 전에는 씁쓸한 표정과 말투의 “그래?” 라는 답변이 돌아오곤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홍콩 승무원에게 “너 참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라고 이야기하자 “정말? 고마워! 한국 사람처럼 화장해봤어!” 라는 열광적인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던가.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인으로서 이렇게 한국에 대한 이미지고 좋아지고 열광하는 외국인이 많아질수록 뿌듯하기도 하고 실질적으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호의적인 사람들 덕분에 일하기가 훨씬 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센 한류열풍에 대한 반작용으로 혐한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고도 하니 한국의 이미지를 위해 한국인으로서 더욱 올바른 행동을 해야겠다는 부담감도 괜시리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굉장히 식상한 말이지만 해외에 나가있는 국민들은 민간 외교관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로 인해 내 조국이 칭찬받지는 못하게 할 망정 최소한 욕은 먹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드는 요즘이다. 왜, 공부 못하는 애는 영어 시험에서 10개 틀려도 아무렇지 않지만 공부 잘하는 애는 맨날 100점 맞다가 한개만 틀려도 굉장히 속상한 그런 느낌이랄까? 예전에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크루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좋아해주는 요즘, 나는 맨날 영어 100점 맞는 학생처럼 부담감이 양 어깨에 가득하다. 그래서 오늘도 한국에 여행 가면 어디서 해산물을 먹어야 하는지 묻는 홍콩 승무원에게 노량진 수산시장을 영어로 예쁘게 적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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