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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밍봉봉 Sep 05. 2023

아이도 키우고, 꿈도 키우고 싶은 욕심쟁이 엄마라서

네 번째 이유, 유년시절




매일 아침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머리를 이런저런 모양으로 묶어주고, 옷매무새를 단장해 줍니다. 이 특별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일상에서, 유년시절을 다시 마주 합니다.


어린 나에게 밥을 주고, 어린 나의 머리를 빗겨주고, 어린 나의 옷의 주름을 탈탈 털어 매끈하게 펼쳐 주지요.






대체 아이가 몇 살이 되면 일하는 엄마들의 퇴사 고민이 사라질까요?


곡예 넘듯 출산과 유아기 시절을 버텨내도 끝이 아니거든요. 육아 시절은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어린이집, 유치원, 베이비 시터... 이토록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함께 꾸역꾸역 넘길 수 있어요.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됩니다. "어떻게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을까?"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양육’이란 ‘아이를 보살펴서 자라게 하는’ 과정입니다. 자라는 것에는 몸과 마음의 성장, 그리고 교육적인 성취까지 포함됩니다.
 
아이는 부족한 엄마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외모, 능력, 재력, 학력... 그저 엄마라서,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사랑해 주었지요. 언제 또 그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있을까요. 그토록 사랑을 주는 존재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요. 사랑하니까 기왕이면 ‘잘 보살피고 잘 자라게' 키워주고 싶어 집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의과대학의 조교수인 지나영 박사님은 저서 [본질육아]에서 말합니다. 아이는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라고요. 아이는 ‘사랑하려고’ 낳는 거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엄마들은 ‘더 많이 사랑하는 방식’으로 ‘더 잘 키우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더 좋은 것을 먹이고, 더 좋은 것을 입히고, 더 좋은 교육을 시킴으로써 더 큰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죠.


엄마라고 해서 아이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랍니다. 아이도 살아가는 게 처음이지만, 엄마도 엄마로 살아보는 게 처음인걸요. 때때로 엄마는 아이에게 진정 필요한 사랑을 주지 못해요. 진정으로 받기 원하는 사랑도 무시하죠. 스스로도 뜨끔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이런 형태를 가지고 있답니다.


바로 엄마가, 자신의 엄마에게서 받고 싶었던 사랑 말이죠.






엄마는 제가 기억하는 평생 워킹맘이셨어요. 출산 휴가 3개월을 겨우 쓰고 복직하셨다고 하니까요. 제가 어린아이이던 시절에는 회사에 다니는 엄마가 많지 않았답니다. 친구들을 통틀어서 회사에서 일하는 엄마가 있는 아이는 제가 유일했어요.
 
어느 날,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굣길에 속상한 일이 있었나 봐요. 마음이 흘러넘쳐 아스팔트 위에 방울방울 떨어졌죠. 저는 일부러 느릿느릿 천천히 걸었어요. 떨어진 눈물자국을 보며 누군가 저를 멈춰 세우고 왜 우냐고 물어봐 주기를 바라면서요. 엄마는 깜깜한 밤이 되어야 올 테 였고, 어린 저는 따스한 어른의 위로가 고팠거든요.


아이를 잘 양육하고 싶다는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작한 퇴사 고민은, 사실은 저를 위한 고민이었어요. 유년시절 혼자 울던 시간들이 아이의 기억에는 남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말이죠.


그런데요, 한편으로는 알고 있었어요. 아이는 알아서 잘 자랄 것을요. 제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 상관없이 말이에요. 엄마가 회사에 다니든, 집에 있든, 아이는 주어진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거든요. 그 안에서 성장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내거든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물론 엄마가 회사에 다니셨기에 외롭게 울었던 날들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로 인해 저는 남들의 아픔에 더욱 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어요. 그뿐 만일까요. 자기 주도적으로 생활하고, 공부하는 방법, 즉 요즘 유행하는 '자기주도학습'을 또래보다 빨리 배웠지요.


유치원이나 학교 행사가 있는 날이면 일하는 엄마가 자랑스럽기도 했어요. 다른 엄마들과는 달리 우리 엄마는 완벽한 화장에, 멋진 투피스 정장에, 또각 구두까지 신고 있었거든요. 예쁘고 전문적인 엄마의 모습에 어깨가 으쓱 해 지곤 했어요.


그러니 내 아이 역시 행복한 날도, 울고 싶은 날도, 좌절하는 날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날도 모두 경험하게 될 거예요. 엄마인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니던, 다니지 않던 말이지요.






소아청소년클리닉의 원장인 오은영 박사님이 한 방송에 나온 강연 중 패널과 나누었던 대화입니다.
 
 “박사님, 저는 우리 아이가 언제나 행복한 아이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불가능합니다.”
 “언제나 좋은 사람만 만났으면 좋겠어요.”
 “불가능합니다.”
 
오은영 박사님에 의하면 누구나 희로애락을 경험한대요. 기쁨, 노여움, 슬픔 그리고 즐거움 말이지요. 시기가 다를 뿐이지 이 네 가지 감정을 인생 속에서 얼추 비슷한 비율로 겪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이를 위해 부모가 기쁨과 즐거움만을 곱게 선별하고 골라서 줄 수는 없대요. 모든 노여움과 슬픔의 가능성을 차단할 수도 없고요. 언젠가 아이는 이 모든 감정을 겪게 될 거예요. 부모는 아이가 그 모든 감정과 상황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일 뿐이죠.

 
그러니 퇴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아이가 아닌 저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했어요.


‘아이'가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을 거 같아.

‘아이'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것 같아.

‘아이’가 엄마가 옆에 있으면 공부를 잘할 것 같아.


아이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것이 아닌, 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지고 가야 할 짐을 아이의 등에 덜컥, 얹을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해.
'내'가 아이를 내 손으로 돌보는 것이 마음이 편해.
'내'가 아이의 학업을 꼼꼼하게 잘 챙기고 싶어.


아이가 퇴사의 이유가 된다면 언젠가 둘 다 큰 상처를 받을 것이 뻔했어요. 퇴사 후 삶이 무료해지거나, 회사를 계속 다니는 동료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거나, 아이가 자라며 반항하는 모습에 후회하게 되는 날.
 
아이가 이유였다면, 그 순간, 쉽게 원망의 화살을 아이에게 돌려 버렸겠죠. 우리는 우리보다 힘이 약한 존재에게 감정을 쉽게 흘려버리기 마련이잖아요.

 
“너 때문에 내가 퇴사했는데!”
“너만 아니었으면 회사에 계속 다니고 지금쯤 임원도 했을 텐데!”
“내가 한때 얼마나 잘 나가던 커리어 우먼이었는데 너 때문에…”
 
실수로 던진 그 한마디로 소중한 아이의 마음이 산산조각 부서졌을 거예요. 정작 아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결정이라면, 아이를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이가 이유는 아니지만, 아이로 인해 퇴사의 고민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죠. 아이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답니다. 친구들과 대화하고, 회사에 다니는 친구 엄마들을 보면서 어렴풋이 알아채기도 해요. 하루는 "엄마는 나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거야?"라고 물어보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아이에게 말해 줍니다. 으스러지도록 꼭 안아주면서요.

“에이. 너 때문이라니. 아니야. 엄마가 욕심쟁이라 그랬어. 너도 키우고, 엄마의 꿈도 키우고 싶었거든.”


아이도 키우고, 나도 키우기 위해 퇴사하고 공방 합니다


그게 제가 꿈꾸던, 따뜻한 어른의 모습이니까요.




 


매일 아침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머리를 이런저런 모양으로 묶어주고, 옷매무새를 단장해 줍니다. 이 특별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일상에서, 유년시절을 다시 마주 합니다. 어린 나에게 밥을 주고, 어린 나의 머리를 빗겨주고, 어린 나의 옷의 주름을 탈탈 털어 매끈하게 펼쳐 주지요. 그리고 아이의 뒷모습에 비치는 어린 나에게 손을 힘껏 흔듭니다.


“안녕! 잘 다녀와!”


저는 욕심쟁이 엄마예요. 아이도, 꿈도, 제 손으로 보살펴서 자라게 하고 싶었어요. 누군가는 욕심이라고 했죠. 누군가는 허무맹랑하다고 했고요. 누군가는 불가능하다고 했답니다.


당장은 해결책이 보였던 것은 아니에요.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는 토끼 두 마리를 움켜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어요. 망망대해 같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새로운 길을 터 내야 했어요. 하지만 꿈을 꾸는 자에게 세상은 그렇게 야박하지 않답니다. 모세 앞에 홍해가 갈라졌듯, 상상하지 못하던 길이 생겨나기도 하지요.


퇴사를 하고 공방을 합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넘어, 아이도 키우고 꿈도 키웁니다.

그리고 덤으로 저도 자랍니다.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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