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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버스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두 번째 이유, 오래된 꿈

by 블루밍봉봉




막 정류장을 떠나가는 버스를 잡으려 뛰어가 본 적이 있나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정류장으로 다가오는 버스는 서서히 멈춰 서요. 하지만 떠날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지요.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고 현실의 벽을 마주하기 전, 당신이 아직 순수한 마음을 가진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 말이에요. 아무런 계산도, 걱정도 없이 해 보고 싶었던 일. 당신이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이요.


저의 장래희망은 ‘만화가’ 였어요. 만화가던, 화가던, 애니메이터던, 일러스트레이터던, 디자이너던. 사실 타이틀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마음껏 이야기를 만드는 어른이 되고 싶었죠.


그림을 그릴 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요. 상상 속에 있는 무언가를 새하얀 도화지 위에 그대로 만들어 낼 때의 그 기쁨. 매일매일 이렇게 그림만 그리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심장이 간질거렸어요.


저는 그림을 사랑했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모아나가 바다를 사랑했듯이 말이에요. 모아나는 막 걷기 시작 한 어린아이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바다에 이끌립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추장의 딸이라는 커다란 책임감이 모아나의 마음을 짓눌러요.


“나도 완벽한 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결국 이 바다로 돌아오게 돼”

I wish I could be the perfect daughter
but I come back to the water
no matter how hard I try


바다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노를 저어 멀리, 멀리, 더 멀리. 모아나는 아버지가 절대로 가면 안 된다고 했던 산호초 부근에 다다르기도 하지요. 하지만 순식간에 덮쳐오는 파도에 뗏목을 놓쳐버리고, 발목에 부상까지 입습니다. 모아나는 바다로 향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주워오기를 반복하지요.


저도 모아나와 같았어요. 틈만 나면 저만의 바다로 달려갔지요. 연습장에도, 교과서 구석구석에도, 자투리 메모지에도. 눈에 보이는 모든 작은 틈새를 그림으로 채웠더랍니다.


하지만 차마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는 못했어요. 그것이 어른들이 보기에 만족스럽지 않은 직업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거든요. “어머, 공부도 잘하는 애가 그림도 쓱쓱 잘 그리네." 그림을 그리는 제 모습을 보며 어른들은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어요. 하지만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에는 금세 미간이 찌푸려지곤 했죠. "만화가? 그림은 취미로 하면 되는 거야. 그림 잘 그리는 의사, 그림 잘 그리는 변호사, 그게 정말로 멋진 거란다.”


저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자랑스러운 딸도 되고 싶었고요. 그러나 만화가라는 직업으로는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주섬주섬 꺼냈다가, 꼬깃꼬깃 다시 구겨 넣었습니다. 그것을 어른이 될 때까지 수도 없이 반복했지요.






열세 살이 되던 해, 캐나다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모르면 용감하다고 하지요. 휴대폰도 없던 시절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그곳에서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기를 보냈지요. 동양인은 전교생에 단 두 명이던 시골 동네였어요. 꼭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저의 의지와, 부모님의 서포트가 짝을 이루었기에 시작할 수 있던 모험이었죠. 낯선 세상에서, 어떻게 해서든 적응하고 살아가야 했어요.


저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말 한마디 안 통하는 타국에서 아등바등 공부했답니다. 마치 잠시라도 멈추면 가라앉는 구멍 난 통통배처럼 치열하게 페달을 밟았죠. 학교 정규수업 시간이 끝나면 각반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더듬거리는 영어로 수업 내용에 대한 질문을 했어요. 하숙집의 불이 모두 꺼진 늦은 밤에는 이불 속에 들어가서 전등을 켜고 몰래 공부하기도 했고요.


그때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냐고요? 물론이죠. 저는 여전히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어요. 온 학교에 그림을 잘 그린다는 소문이 퍼져서 친구들과 선후배들에게 그림 요청이 오기도 했으니까요. 친구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기도 하고, 학교 카페테리아의 벽면을 가득 채우는 벽화도 그렸죠. 학교 신문에는 4컷 만화를 연재했어요. 고등학교 3년 동안은 교내 모든 행사의 포스터를 그려 온 학교를 도배했으니까, 제가 그린 포스터가 수천 장은 족히 될 거예요.


시간은 흘러 어느덧 대학교 진학을 앞둔 학년이 되었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않은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의미 없는 고민이었죠. 정답은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한 강연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말하길, 부모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는 아이는 꿈을 키우지 않는대요. '꿈'보다 '죄책감'이 크기 때문이죠. 디즈니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에 나온 '앰버'처럼요. 앰버는 멋진 유리그릇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민 2세대인 부모님의 절대적으로 희생적인 삶 앞에서 자신의 꿈을 내려놓죠.


"(부모님의) 커다란 희생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야. 나의 삶도 희생하는 것."

Only way to repay sacrifice so big is to sacrifice your life too.


저도 그랬어요. 고생해서 유학을 보내 주신 부모님께 시답지 않은 결과를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저를 위해서 희생하신 시간을 배반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전공할 실력은 아냐. 봐, 고작 이런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겠어?’


그래요, 꿈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험난한 이 세상, 똑 부러지게 살아야죠. 보물처럼 아끼던 그림들을 쓰다 버린 냅킨처럼 미련 없이 정리했어요. 그 당시 제 능력으로 갈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을 선택했고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국내 제일의 대기업에 철썩, 취직을 함으로써 '자랑스러운 딸'의 모습에 가까워져 갔답니다. 좋아하는 일이야 뭐.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후, 천천히, 취미로 하면 되는 거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한국에 돌아와 회사에서 근무를 시작했어요. 입사 4년 차에 돌고 돌아 전공과 상관없는 디자인 부서로 전배를 신청했답니다. 전공자가 아니니 직접 디자인을 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꿈꾸던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어른', 즉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거든요.


디자이너들과 대화하면서 저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디자이너들은 처절하게 투쟁하며 그 자리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말이에요. 어떤 디자이너는 전공을 세 번 바꾸었다고 했어요. 어떤 디자이너는 미대 진학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단식투쟁을 했다고 했죠.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가는 엠뷸런스 안에서 허락을 받아 냈더래요.


그때 깨달았죠. 내가 꿈을 내려놓은 건 그 어떤 상황이, 그 어떤 사람이 나를 막아섰기 때문이 아니었구나. 그때 내가 그 길을 가지 못했던 건, 내가 나를 충분히 믿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구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언젠가 부모님께서 넌지시 말씀하셨어요. "이토록 웹툰이나 애니메이션 시장이 커질 줄 알았으면 그때 너의 꿈을 밀어줄 것을 그랬다. 그때는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라고 말이죠. 그런데 사실 부모님 때문이 아니었거든요. 죄책감이 좀 들면 어때요. 돈을 좀 못 벌면 어때요. 저는 어떻게 해서든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거예요.


그때, 내가 나를 확실히 믿어 주었다면요.






제 앞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었죠. 하나는 곱게 포장된 아스팔트 같은 길. 명문대를 졸업해서 대기업 입사를 하고 쭉쭉 정해진 트랙 위를 달려가면 되는 길. 두 번째는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길. 꿈을 따라 허허벌판에 스스로 터내야 하는 길이었어요. 솔직히 두려웠어요.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하기는.


'안정된 길을 두고 굳이 다른 길로 갈 거 뭐 있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으니 여기까지 다다를 수 있었던 거잖아. 이제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이 위에서 전속력으로 달려보는 거야!'


꿈을 외면하고 돌아섰어요. 꿈이야 언제든 꿀 수 있는 거니까. 언젠가 삶에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언젠가 시간이 많아지면. 그때 잠깐 다시 그림을 그리는 길로 가봐도 되겠지,라고 생각했지요.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냐고요?


어느 때부터인가, 저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답니다. 급기야 어느 날은 스스로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어요. 거짓말처럼요. 친구가 “그때 너 그림 그리는 거 참 좋아했었잖아.”라고 지나가듯 말했을 때, 외계어라도 들은 듯 어리둥절 해 하며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고?”라고 반문했을 정도로요.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 마음속에서 빛나던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걸.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다음이 있다면, 다음에는 놓치지 말자. 하찮게 여기지 말자. 소중하게 여기고 빛나게 다듬어 주자.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순간을 기약하며 다짐했어요.


몇 년 후, 육아휴직으로 잠시 회사원의 삶에 쉼표를 찍었습니다. 그 시기에 우연히 눈에 띈 한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했어요. 그곳에서 처음 해 보는 신기한 작업에 눈을 반짝이며 몰입하던 순간! 방심하고 있던 무방비한 제 심장을 무언가 간질, 거리더군요.


매우 짧은 찰나였어요. 그렇지만 모를 수 없었지요. 까마득하게 잊혔던, 바로 그 꿈과 비슷한 형태였거든요. 저도 모르게 달려가던 저만의 바다 말이에요. 처음에는 허무하게 놓쳤지만 두 번째는 어림도 없었어요. 무조건 잡아야 했어요. 네 이놈, 게 섰거라!






막 정류장을 떠나가는 버스를 잡으려 뛰어가 본 적이 있나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정류장으로 다가오는 버스는 서서히 멈춰 서요. 하지만 떠날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지요. 숨이 턱에 차오르게 소리치며 달려가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요.


꿈에도 사용기한이 있답니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갈 뿐 내 것이 아니에요. 어느 순간 내게 왔다면, 그 행운을 놓치지 말고 움켜 잡아야 해요. 탈까 말까, 망설이다 보면 가차 없이 출입문을 닫고 곧장 떠나버려요. 부릉부릉, 다음 사람을 향해서 말이죠.


눈앞에 당신이 탈 버스가 도착했나요? 그렇다면 놓치지 마세요. 올라타세요.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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