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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ia May 08. 2020

'90년생이 온다'에 반기를 들다

'본투비 꼰대'는 어느 세대에나 있다


# 우리 모두는 신세대이자 꼰대세대


나는 80년대생 대기업 부장이다. (물론 한 달 후면 잃게 될 가능성이 99%인 타이틀이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언론사에 취직해

언론사가 '갑 오브 갑'인 시절을 보낸 50~60년대생 '구악' 상사들도 겪어봤다.


70년대생 선배들은 그나마 나이스한 편이었다. 오히려 언니오빠들로 느껴질 만큼 친근한 존재들이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함께 깔깔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형형색색의 가발을 쓴 채 방방 뛰며 <말 달리자>를 고래고래 불러대고

다음날 출근해 같이 순대국을 먹으며 해장하는.

90년대생들이 끔찍한 꼰대로 바라볼 70년대생도, 한때는, 그런 존재들이었단 얘기다.


연차가 올라가면서 기자 본연의 업무를 벗어난 실무 부담이 쌓여와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때

운 좋게 헤드헌터를 통해 이직을 했고(이직보다는 전직이었다. '갑'에서 '을'로, 정반대 직무를 맡게 됐으니),

새로운 동료들에 적응하랴, 직무에 적응하랴, 펑펑 터지는 일들 수습하랴,

많은 우여곡절에도 나름 잘 적응해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을 했다.


돌아보니 어느새 나이는 내일모레 마흔, 90년대생 띠동갑 신입이 들어온지는 이미 몇 년이 지났다.

회사 엘리베이터, 복도, 회의실, 어디를 봐도 나보다 어린 사람이 늙은 사람보다 2배는 많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본인이 생각하는 나이와 실제 나이에는 괴리가 있다.

나는 아직 '젊다' 혹은 '어리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숫자는 그렇지 않다.


40대 부장들은 본인들이 후배 마음 잘 헤아리는 '나름 신세대'라 생각하지만,

대학교 갓 졸업하고 들어온 신입들이 보기에는 그저 나이 많은 선배다.

20대 중후반의 신입들은 본인들이 힙한 청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갓 스물이 보기에는 올드하기 나름이다.


곧 마흔인 나도, 내 윗 사람들은 부담스럽다.

예전에 그렇게 친구같던 70년대생이 어느새 권력 앞에 무릎 꿇은 핵꼰대가 되어있다.


직장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연차가 쌓일수록, 직급이 올라갈수록

누구나 꼰대가 되고,

나보다 먼저 그 세상에 젖어든 내 윗사람들이 갈수록 더 싫어진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부모님을 보면서나, 선배의 싫은 면을 보면서나.

하지만 정작 그 날이 오면,

내가 싫어하던 짓 100% 안하고 있다고 장담 못하는 게

그게 세월의 묘미인가 보다.



# 세대 분류의 오류 : 너희만 싫은 게 아니란다


나이듦이라는 자연의 섭리 때문에 세대 차이는 항상 존재한다.


대대로 '베이비붐 세대', 'X세대', 'Y세대', '밀레니엄 세대', 'Z세대' 등 끝없는 이름 붙이기가 이어졌고,

고출산, 서양문화 유입, 경제 호황, 2000년대로의 Y2K, 디지털 발전을 거쳐

딱히 커다란 사회경제적 전환 요인을 꼽기 힘든 요즘은 출생년대로 세대를 가르고 있다.


10년 단위로 묶어버리기만 하니 참 편리하다.

하지만 4가지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세대별 특성을 통째로 단정짓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최근 화제가 된 책들 중에 출생년대로 시대를 대표한 게 <90년생이 온다>와 <82년생 김지영>이다.


여태까지의 내 인생과 개인적인 경험에서는 두 이야기 모두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82년생 김지영>은 책을 읽는 동안 82년생이 아니라 72년생 정도가 돼야 맞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이야기하려면 시대적인 배경과 여성 문제를 따로 가를 수가 없기에 나중에 따로 쓰려고 한다.


<90년생이 온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야 할까.

90년생이어서 한국 조직의 비효율과 부당함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용기 있게 표현을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90년대생 들어 높아졌을 뿐.


80년대생인 나도 저녁 삼겹살 회식 정말 끔찍하게 싫다.


초년생 때 선배들이 출장 가서 사 온 온갖 국적의 온갖 종류의 술(백주, 와인, 꼬냑)을 죄다 맥주에 말아먹은

끔찍한 회식의 기억도 있고, 하룻밤에 폭탄주 40잔을 마신 기억 등 그런 류의 회식이라면 수없이 경험했다.

한때 회사에서 '폭탄 40잔'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주량이 곧 사회생활 능력으로 평가되는 시절을 지나왔지만,

그리고 다행히 술에 센 편이라 주량의 후광을 얻어 많은 호의도 얻었지만,

나도 싫었다.


회식 다음날이면 손이 벌벌벌 떨리고

속에서 시큼한 와인 냄새에 달달한 오크통 냄새에 위가 타들어가는 백주의 증기까지 섞인 트림이 올라오는데

그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위안감 말고는 내 육체에도 정신에도 좋을 게 하나 없는 소모전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초년생 시절을 지냈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조기에 소진해버렸다.

예전 동기가 한 말인데 쏙 와닿은 말이 있다.

자동차로 얘기하자면, 연식은 얼마 안됐는데 킬로수(마일리지)는 엄청난, 속은 썩은 자동차라고.


그래서 이젠 내 시간이 더 소중하다.

더 많은 걸 경험하고 즐겼어야 할 20대를 모두 회사에 쏟아부었기 때문에,

이제라도 내 인생, 내 저녁시간, 내 주말을 즐겨야하겠기에.


무의미한 회의와 형식만 갖춘 보고서.

90년생이 아니어도, 누가 봐도 '일을 위한 일'에 불과하다.

이것들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꼰대'들 때문인 것도 맞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꼰대'를 필요로 하는 한국 조직의 구시대적 시스템 탓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임원들의 업무를 조금 더 가깝게 관찰하게 되면서 느낀 바는

그들은 90%의 시간을 '보고'와 '인맥 관리'에 소모한다.


그 '보고'는 아랫것들, 꼬마병정들이 십시일반 취합하고, 엑셀 만들고, 워드 치고,

A4 1~2장 안에 깔끔하게 쏙 들어가도록 조사 쳐내고, 단어 잘라내고, 순서 바꿔서 만들어낸

'페이퍼'로 이뤄진다.



그들이 그렇게도 '페이퍼'에 목을 매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딱 한 가지다.

윗 사람이 물어볼 때 대답 못 할까봐.


대기업 내 무수한 조직의 각각의 조직장이, 다른 조직이 돌아가는 일까지 파악하고 싶어한다.

그 동향을 본인들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본인이 움직여 얻어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아랫것들 시켜 다 알아오라 한다.

'꼰대'가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체면 상할 일을 방지하기 위해, 조직은 돌아간다.

'회사'가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꼰대'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일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한국의 조직은 '윗분을 모시고 섬기는'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사팀에서, 홍보팀에서 아무리 혁신적인 인사제도와 개방적인 조직문화, 수평적인 직무환경을 내세워봤자

빛 좋은 개살구다.


특히 이런 '꼰대'들만의 보직 계승, 줄타기는 세대가 바뀐다고 해서 쉽게 고쳐질 문제가 아니다.



# 꼰대의 성장과정 : 90년생이라고 다를까


한국 조직의 유망주, '꼰대'가 되기까지의 성장과정과 사고과정은 이렇다.


* 초년생~주니어

- 개인평가를 잘 받아야 동기들보다 뒤쳐지지 않고 승진할 수 있다.

- 개인평가를 잘 받으려면 내 팀장에게 미움받지 않아야 한다.


* 시니어

- 전문적인 역량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회사를 오래 다니려면 보직을 꿰차야 한다.

- 한직으로 밀려나기 싫다. 조직장에게 나를 어필해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내가 보직을 얻어야 한다.


* 조직장

- 단 몇 번이라도 실수하면 임원이 나를 나쁘게 평가할 수 있다. 조직장은 언제든 누구로든 대체 가능한 자리다.

- 피라미드의 허리를 넘기까지 내가 어떻게 왔는데, 여기서 미끄러질 수는 없다.

- 내가 모시는 임원이 경영진 앞에서 실수하지 않고 주목받을 수 있게 보필해야 한다.

- 든든한 아군임을 증명하기 위해 유용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 정리해드리자.


* 임원

- 나는 대기업 임원이다. 남들보다 빠른 성공이다. 계약직인 임원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숫자가 필요하다.

- 내가 거느린 조직이 숫자로 이익을 창출하는 곳이 아니라면 남의 숫자라도 끌어와 성과로 포장해야 한다.

- 대표님이 회의에서 어떤 질문을 하실 지 모르니, 무엇이든 답할 수 있게 모든 정보를 일단 모아놔야겠다.


90년대생이라고 해서, 대기업에서 잘 나가는 것을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90년대생이라고 해서, 모두가 창의적인 직업과 인생을 꿈꾸란 법은 없다.

90년대생이라고 해서, 자신이 유능한 인재라는 존재감을 느끼고 싶지 않을리는 없다.


그렇게 결국,

한국 조직에서는

90년생도, 2000년생도, '본투비 꼰대'의 싹을 품고 유망주로의 성장을 꿈꾸게 된다.


그렇게 결국,

한국 조직의 뿌리깊은 '섬김' 문화와 말 잘듣는 꼰대부대를 거느리길 원하는 '상전' 문화가 없어지지 않는 한,

세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꼰대는 계속 자라난다.


그저 동기들한테 체면 상하기 싫어, 자존심 다치기 싫어,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그렇게 시작한 직장생활이

60년대생도, 70년대생도, 꼰대로 키워냈을 뿐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꼰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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