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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lia May 11. 2020

'90년생이 온다'에 반기를 든 꼰대의 구시대적 변명

정말, 좋은 선배이고 싶었어.

# 미안함


본투비 꼰대의 잠재력을 보여준 후배에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지만, 

나의 자발적 소외에 광속을 더해준 건 사실이나, 그들의 행보를 비난한 것은 아니다.


조직에서의 생존을 목표로 꼰대로의 성장을 자처한다고 해서, 나에게 그들을 미워할 자격은 없다.

나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해서,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미련스럽게도 정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

정말,

좋은 선배이고 싶었다.


정말이지 꼰대스러운 표현이지만 '인생 선배' 혹은 '사회생활 선배'로,

너희가 더 나은 경력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직을 비난도 했고 바른 말을 대신 해주려고도 했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반복되는 내 말이 진짜 꼰대스럽게 들렸을 거다.

그저 '갈 곳도 없으면서 불평불만만 쏟아내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직장생활에서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인 '기회'와 '성장'을 얻을 수 없는 조직이라는 것을,

너희가 월급의 단맛에 젖어 망각하고 있는 그 사실에 하루라도 일찍 눈뜨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미안하다.

어쩌면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보다 어른스러워서, 아직 젊어서,

애써 밝은 마음가짐으로 버티며 생존법을 터득한 것일 뿐인데 내가 오해했을 수 있겠다 싶다.


에너지를 쏟아붓는, 웃음으로 충만한 표면적 대인관계를 선택하지 않고

내면으로 숨어버리는 다른 생존법을 선택한 후배에게는

나의 시니컬한 말들과 어두움이 너무 짙은 나머지

하루하루를 살게 할 밝은 마음마저 잃게 해버린 건 아닐까, 죄책감도 조금 든다.


나 자신이 입은 상처 때문에,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후배에게 정작 필요한 코칭은 못해준 것 같아 더없이 미안하다.




# 이마저도 구시대적 착각일까


후배가 성장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을 챙겨주지 못했다는 생각.

진심으로 후배의 성장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생각.

이런 미안함과 죄책감이 남는 것조차 어쩌면 구시대적 착각일까.


어쩌면 그들은

나에게 어떤 것도 기대한 적이 없는 것 아닐까.

전형적인 꼰대들처럼, '너희들보다 더 많이 살고 더 많이 겪은 내가' 다 알고있다는 듯이,

그저 반대편 귀로 순식간에 빠져나갈 꼰대 잔소리만 했던 건 아닐까.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따위의.


애초에 직장 동료, 선후배라는 건

진심같은 건 필요 없는 건데 오지랖이었나.

표면적인 관계에 상대방은 원하지도 않는 진심을 쓴다는 것,

그게 어쩌면 진짜 꼰대일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정말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는데. 

그저, 꼰대가 꼰대했나보다.




# 퇴사를 고민하다 철학자가 되어간다


- 꼰대란 무엇인가.

- 선배란 무엇인가.

- 조직이란 무엇인가.

- 사회생활이란 무엇인가.


이 제목 중 하나만으로도 3시간 토론이 가능할 것 같다. (말할 사람만 있으면)


쉬는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철학적 고민은,

나는 철들지 못하는 존재인가 - 이다.


70년대생만 꼰대인가. 나랑 동갑이어도 핵꼰대인 동료를 떠올리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꼰대짓 하기 힘들텐데, 사바사바하는 거 에너지 엄청 들텐데.


Q) 자신을 희생하고 조직에 헌신하는 그가 철 든 어른이고, 나는 철부지인가.

Q) 소속된 조직에 열정을 바치는 그는 승자이고, 열정도 뭣도 없는 나는 그저 루저, 낙오자인가. 

Q) 내 감정 하나 추스르지 못해 자발적으로 분리되어 나온 나는 사회 부적응자인가.


계속되는 질문, 질문.


최근에는 글을 쓰면서,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고민이 추가됐다.


Q) 한때 몸담았던 곳을 욕하면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Q) 이것이 인간의 도리인가.

Q) 인과응보가 두려워 할 말을 못한다면 나는 무엇을 쓸 수 있는가.


주로 나라는 인간의 됨됨이에 대한 자괴감이다.

그에 더해 내가 사라진 자리에 소용돌이치는 먼지처럼 빙빙 돌게 될 내 욕에 대한 두려움이 따라온다.


Q) 어차피 다시 보지 않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인데, 내 욕을 한다고 내 인생에 영향이 있는가.


처음으로 답이 달린다.

A) 혹시라도 새 직장을 구하게될 때 아무도 날 안 써주지 않을까. 평판조회라는 게 있는데...


머리깎고 절에라도 들어가야 할 판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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