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2018년 1월 14일
오늘은 원래 친퀘테레에 가기로 한 날이었으나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조금은 한적해 보이는 아씨시로 가기로 하고 어제저녁 때 아씨시행 기차를 왕복으로 예매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씨시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제일 유명한데 일요일은 휴관이라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친퀘테레행 기차표로 바꿀 생각으로 아침 일찍 매표소에 가서 물어보니 아주 단호하게 '노~!'라고 대답한다. 그럼 내일 날짜로 변경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그것 역시 '노~!'란다. 어쩔 수 없이 우린 아씨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기차를 2시간 30분 넘게 타고 아씨시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푸른 평원을 지나 10여분 정도 오르막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면 아씨시의 성문 앞에 도착한다. 무어라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뭔가 고즈넉하고 따뜻하면서 성스러운 느낌? 인상적인 골목과 계단의 모습들이 마치 마을 전체가 중세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성문을 지나 골목길을 따라 위쪽으로 쭉 올라가다 보면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이 나온다. 와~ 아름답다. 성당 자체도 엄청 크고 아름답지만 성당 아래로 보이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푸른 평원의 모습도 황홀하게 멋지다. 이 멋진 성당을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하나 했지만 다행히도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도 여행책자의 정보가 잘못된 건가 보다.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여기도 예외 없이 무장군인들이 보안검색을 한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성당이나 유적지에 들어갈 때마다 무장한 군인이 일일이 보안검색을 하는데 몇 번을 하다 보니 이젠 웃으며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됐지만 처음엔 총 때문에 많이 긴장했었다. 암튼 군인들과 따뜻한 인사를 하며 보안검색을 마치고 성당 안에 들어가니 마침 미사 시간이었다. 우리도 잠시나마 미사에 참여하려고 일단 자리에 앉았다. 12시가 되니 신부님이 나오시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맞춰 성가가 울려 퍼진다. 성당 안을 가득 채운 성스러운 울림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나도 모르게 눈물도 잠시 흐른다. 마치 '너 여기까지 잘 왔다. 너 힘들었던 거 다 안다. 내가 널 축복해주마'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내가 이탈리아에 와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정말로 신기하고 뜻깊은 경험이었다.
성당에서 잠깐 울고 나왔더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동안 답답했던 가슴을 깨끗한 장대비로 씻어낸 것처럼 말이다. 가슴을 비우니 뱃속의 허기가 찾아왔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현지인들이 꽉 차 있는 식당이 보였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적어도 실패는 않겠다는 생각에 일단 안으로 들어가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는 메뉴 속에서 오늘의 코스요리를 주문하고 와인도 한 병 시켰다. 맛은?... 음... 일단 코스요리는 양이 너무 많았고 와인은 촌스런 우리 입맛엔 달달함이 부족했다. 그래도 뭐 이 동네 핫플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것에 작은 위안은 삼으며 기분 좋게 골목길 산책을 즐겼다. 코무네 광장, 루피네 성당, 로까 마조레를 돌아보고 기차역으로 돌아와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과 그 앞에 있는 벼룩시장에서 빈티지 찻잔과 주전자를 사서 피렌체로 돌아왔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덕분에 나에게 아씨시는 너무 따뜻하고 큰 위안을 받은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