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1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 남자의 딸

부고(訃告)

by 시아 11시간전

2018년 4월 10일.

아직도 그날을 내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며칠 간의 밤샘 작업으로 누적된 피로 때문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앉으니 폐인이 따로 없었다.

퀭한 눈 밑 다크서클과 송장처럼 창백한 얼굴을 가리려 아무리 화장을 해도 가려지지 않았다.

텀블러에 뜨거운 물과 인스턴트커피 3 봉지를 탈탈 털어 넣고, 굽지도 않은 퍽퍽한 식빵을 입속에 욱여넣으며 집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속이 쓰려오기 시작하더니 두어 번의 헛구역질 끝에 신물이 올라왔다.

화장실에 가서 억지로라도 게워내고 나면 속이 편할 것 같았지만 제산제 한포를 입에 털어 넣고는 PC를 켰다.

사내 시스템에 접속하고 메일을 열어보니 하루 사이에 본사에서 30개가 넘는 메일이 와있었다.

그중 제목 앞머리에  <긴급>과 <중요>가 달린 메일이 20 통이었다.


‘이 새끼들은 뭐가 맨날 긴급이고 중요야? 누가 보면 사람 목숨이라도 왔다 갔다 하는 줄 알겠네.‘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첫 번째 메일을 열어보려고 하는데 책상 위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진동모드로 바꾼다는 것을 깜빡했다.

앞, 뒤,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일하는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얼른 진동모드로 바꾸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엄마였다.

입사한 이래 단 한 번도 근무 시간에 전화를 한 적 없는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는 건 분명 무슨 일이 있는듯했다.

잠시 나가서 전화를 받으려고 일어난 순간, 부장이 나를 불렀다.


“강 과장, 메일 봤지? 어제 검토한 보고서 가지고 내 방으로 좀 와. 기껏 다 만들어놨더니 본사에서 전면 수정하라고 가이드가 왔어. VIP가 숫자에 엄청 민감하대.”


나라님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사 윗대가리 방문에 온 회사가 난리통이었다.

이번 방문으로 회사에 피바람이 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나 또한 초긴장 상태였다.

며칠 동안 밤을 새우며 만든 보고서를 전면 수정하라는 말에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울리는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던져놓고 보고서를 들고 부장실로 향했다.


부장과 이야기를 마친 후, 수정사항을 팀원들에게 전달하러 가려다가 문득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가 생각났다.

자리로 돌아가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3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1통이 와 있었다.

모두 엄마였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해.’


전화를 걸기 전 문자를 먼저 확인해 보았다.


‘미연아, 시간 날 때 전화 좀 줘.’


평소 엄마답지 않았다.

지병도 없고 건강한 편인 엄마가 근무 시간에 전화를 한 것도 모자라 전화를 달라는 문자까지 남겼다는 건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잠시 사무실 밖으로 나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3번의 신호음이 울리자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엄마, 갑자기 왜 전화를 달라는 거야? 무슨 일 있어?

미연아…

뭔데? 왜 그러는데?

미연아…

도대체 왜 그래? 평소 엄마답지 않으니까 불안하잖아!


네 아빠 어제 죽었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