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백일글쓰기 008
주말, 특히 일요일은 감정적으로 육아가 힘들다. 아무 일 없는 평화로운 일상에 화가 불쑥불쑥 올라왔다. 보통 평일에 거의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데 특히 8월에는 여름방학에 기관지염까지 겹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이번엔 주말마저 육아가 나만의 몫인 것처럼 느껴져서 힘들었다. 일이 바쁜 남편은 일요일 새벽 6시가 되어서야 집에 왔고 정오가 되어서야 느지막이 일어났지만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소파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일어나 아이와 역할놀이를 하며 놀아주었다. 세 사람이 함께일 때 제일 행복해 보이는 아이는 그런 아빠의 존재만으로 신이 났다.
남편은 놀이를 하다가도 앉아서 잠이 들었는데 아이는 그런 아빠를 깨우거나 보채지 않고 “아빠가 잠들었어”라며 나에게 와서 이런저런 미술놀이를 제안한다. 그럼 나는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아이를 따라 물감도 칠하고 플레이콘으로 공주의 집도 만들고 플레이도우로 요리도 한다. 별다른 재주도 없고 ‘대단하다’,‘최고야’,‘멋져’라는 말밖에 못하는 엄마인데도 아이는 만족한다. “유치원에 안 가고 이렇게 엄마랑 있으니까 좋아”라고 말하며 안아주고 뽀뽀도 해준다. 벌써 몇 주 동안 가정보육하면서 내내 붙어있었는데도 좋단다. 엄마가 좋아 죽겠다는 아이에게 받은 만큼 애정을 돌려주지 못할 때에는 동화에 나오는 마녀가 된 느낌이다.
어느 정도로 못된 마녀냐면, 남편이 “나 챙겨주는 사람은 청조뿐이야.”라며 고맙다고 말했는데 그 말조차 고깝게 들릴 정도였다. ‘그럼 나는 누가 챙겨 주는데?’라며 야속하게 느껴졌다. 평소 남편은 육아에 최선을 다하는데 일하느라 바빠서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가정을 위해 돈을 벌려고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렇다 보니 화를 낼 대상이 없다. 무언가, 누군가 잘못한 게 있어야 분풀이라도 할 텐데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나만 쓰레기가 된다.
종일 자괴감으로 하루를 보내다가 월요일이 되었다. 남편은 일이 덜 끝났다며 일요일 밤늦게, 평소보다 일찍 회사로 향했다. 늦잠을 잔 나와 아이는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너무 늦지 않게 등원했다. 집에 돌아와 한 숨 돌리니 숨어있던 여러 가지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남편에 대한 고마움, 아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의욕과 설렘. 이렇게 혼자가 되고 보니까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어쩌면 동화 속 마녀도 처음부터 못된 성격은 아니었을 수 있다. 현생이 너무 버거웠을지도 모를 일이지. 이제 나는 동화 속 요정이 되어 한 시간 뒤에 집으로 돌아올 아이에게 진심으로 웃어주며 행복을 나눠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