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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든새 Sep 17. 2022

장래희망

다시 백일글쓰기 020


요즘 나는 아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 하루에도  번씩, 1분에도  번이나 “엄마  봐봐라며 리액션을 바라고 본인이 보는 유튜브 영상 (대사도 없는 애니메이션) 함께 보고 웃으라고 말한다. 포켓몬 게임도 하고 싶다기에 틀어주면   마리의 진화과정을 하나씩 설명한다. “이게 진화하면 이게 되는 거야라고 이름도 제대로 모르면서 말이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건지 “엄마 내가 이거 색칠한  너무 예쁘지? 이걸 그려서 너무 예뻐?”라며  번씩 묻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복잡하다.  딴에는 충분히 사랑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에겐 턱없이 부족한가 보다.

특별히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지만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다. 아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며 눈을 마주쳐주고 싶다. 같은 질문을 100번 받아도 101번 상냥하게 대답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가 원하는 대답만 해줄 순 없어도 만족할 수 있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사랑이 부족하다고 한 순간도 그렇게 느끼지 않길 바란다. 아이가 내 사랑을 알고 느꼈으면 좋겠다.

이런 내 모습에 친정엄마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보기엔 내 고민이 호강에 겨운 투정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엄마로서 나와 내가 나로서 지내고 싶은 자아가 자꾸만 충돌한다는 것이다. 글 쓰고 영상 편집하면서 강의도 보고 책도 읽고 싶은데 아이는 자신의 모든 일과에 내가 함께 하길 바란다.

엄마를 사랑해서 일거수일투족 함께 하고 싶은 아이와 엄마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엄마, 솔로몬은 둘 중에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서 자랐다. 표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에 장래희망을 적는 칸이나 존경하는 사람에는 늘 ‘엄마’라고 썼다. 특별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지만 당시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의무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나의 장래희망은 정말로 ‘좋은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의무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을만한 엄마가 되고 싶다. 결국 내가 나로 지내고 싶은 이유도, 당당한 엄마가 되어 좋은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다.

미련이 남지 않는 육아는 없다지만 최대한 덜 후회하고 싶다. 100점은 아니더라도 80점짜리 엄마는 되고 싶다. 오늘도 나는 최선을 다 해서 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좋은 엄마’라는 목표가 시시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만큼 절실히 바라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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