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백일글쓰기 019
나는 공부할 때 방청소부터 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까 정리가 안 된 집을 보면 의욕이 한 풀 꺾인다. 무엇을 하든 눈에 보이는 공간이 정리된 상태로 한다.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집중이 안 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래서 외출할 때에도 무조건 청소하고 나간다.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집이 어지럽혀 있으면 정리하느라 쉴 수가 없어서 그렇다.
어제는 냉장고 정리를 했다. 그제 배탈이 난 게 상한 음식을 먹어서 그런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 정리도 했는데 그때뿐이다. 쌓인 집안일을 끝내면 뭘 시작하기도 전에 지친다. 게다가 아이와 함께 사는 집은 아무리 청소해도 티가 안 난다. 공든 탑이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는 걸 내 눈앞에서 본다. 아이를 탓하고 싶진 않은데 가끔 걱정도 된다. 오늘 하루가 내일도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되다가 내 삶이 끝날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런데 간밤에 퇴근한 남편이 무거운 빨래 보따리를 가지고 빨래방에 다녀왔다. 쌓인 빨래가 없는 것만으로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기분이다. 내일 내가 다녀올 테니 괜찮다고 했는데도 편히 쉬라며 자신이 나를 지원해주겠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중에 제일 듬직한 모습이었다. 누가 보면 별거 아닐 수 있고 정말 사소한 건데도 그 순간에는 결혼 잘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