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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 Sep 05. 2024

죽지 않아야 할 이유

왜 사는지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질문이 완결된 것은 아니다.


‘왜’ 사는가?


죽지 않아서. 진화가 부추겨서.

그러나 이들은 지금껏 우리가 살아있던 이유를 알려줄 뿐,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이들은 본능만을 포함하고 있지만, 인간은 본능만으로 살아가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만’ 가지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는 그 대단한 것, ‘이성’또한 존재하지 않는가? 고로 다음 질문이 따라와 마땅하다.


“본능을 거스르고 죽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유전자 풀은 그저 생존을 통한 셀렉션을 거쳤을 뿐이지 우리에게 ‘좋은’ 것만을 주지는 않았다. ‘생존에 유리했던’ 것들을 주었을 뿐이다. 사실 이 ‘좋다’라는 단어도 모호하다. 누구의 기준에서 ‘좋은 것’ ‘안 좋은 것’을 가리는가? 모호한 표현이지만 가령 지방을 잘 쌓는 능력이 생존에는 유리하지만 미관상으론 '좋지 않다'는 것과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하며 이 부분은 넘어가 보도록 하자.


"본능을 거스르고 죽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물을 수 있고, 물어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묻지 않는다면 인간은 진화에 유리했던 것이 우리에게 ‘좋은’, 그 애매한 표현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라고 믿으며 바보같이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본능을 빼고 나서도 우리는 삶을 추구할 필요가 있는가? 삶이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정녕 삶을 원하는가? 만약 진화를 거스르는 것이,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면 굳이 살아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분명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택할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본능이란 인간을 그냥 놓아두면 자연스럽게 인간을 인도할 첫 번째 안내자다. 그러나 첫 번째 안내자란 원한다면 해고해 버리고 두 번째 안내자를 데려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항상 본능을 따를 의무는 없다.      


그러므로 묻는다.

"본능을 거스르고 죽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의 이야기는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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