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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 Aug 31. 2024

삶의 의미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와, 고전적인 질문이다.


똑똑한 척을 하며 ‘이 질문에는 답이 없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인류가 몇 쳔년동안 찾지 못한 답을 네가 찾는 게 가능하겠냐며 말이다.


인간은 아주 오랫동안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기원전부터, 인간이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삶’이라는 것을 처음 인지한 그 순간부터. 그러니 의문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민해 왔는데 정말 답이 없다고? 나는 인류가 수천 년을 고민해 도달한 이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먼저 질문의 의미부터 찬찬히 뜯어보자. 사람들이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의도는 뭘까? 보통 이런 질문을 던질 때는 철학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거나 삶에 회의감이 들었을 때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궁금할 때, 어딘가 의미가 있을 것만 같고 그 의미를 알고 싶기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은 어떠한 이유에 의한 것이라 믿으며 “삶의 의미”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정말로 묻고 싶은 질문은 아래에 더 가깝겠다.


“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는 명료한 답이 존재한다.  




1. 죽음에 대한 보편적 인식

일반적으로 ‘죽음’이란 ‘나쁜’ 것이다. 우리는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회피한다. 이 형체 없는 무언가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영원한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 누군가에게 잊히는 것이 두렵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2. 진화론의 기본 아이디어: 자연선택

자연선택이란 특수한 환경 하에서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지닌 개체군이, 그 환경 하에서 생존에 부적합한 형질을 지닌 개체군에 비해 '생존'과 '번식'에서 이익을 본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포식자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빨리 달려야 하는 동물이 ‘느린 달리기 형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자. ‘느린 달리기 형질’을 가진 개체는 대부분 포식자에게 먼저 잡혀 죽을 것이다. 그렇게 ‘느린 달리기’ 형질을 가진 개체의 숨이 끊길 때, 그 형질도 함께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런 점에 있어서 ‘죽고 싶어 하는 형질’보다 생존에 불리한 형질이 있을까? 그들은 아주 손쉽게 유전자 풀에서 제거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자발적으로 죽고 싶어 하지는 않는 형질들이 살아남았을 것이고, 우리 안에 남아있는 것도 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고, 자동차가 고속으로 다가올 때 멀뚱멀뚱 서있지 않는다.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도 선택의 순간 일련의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삶을 예찬한고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매번 성공적으로 죽음을 피하고 나서 남은 것이 다름 아닌 ‘삶’이다. 조금 기분 나쁘게 말하자면 삶이란 죽음을 피해 남은 부산물일 뿐이다.

철학적 이유 따위 없어도 우리는 살아간다. 죽지 않았으니까. 삶의 ‘이유’란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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