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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 Sep 13. 2024

꿈2: 희망이 없는 방

악몽을 꿨다.


허리가 아파 방문한 정형외과의 조언대로 쿠션을 허리 아래에 대고 자는데 그게 여름 재질이었다. 까끌까끌한 재질의 쿠션이 이상하고 기분 나쁜 감각을 선사하며 등을 간지럽혔다.


꿈속에서 같은 감각이 상체를 잠식했다. 이제 꿈의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하게 나는  일렁이는 간지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저 멀리 엄마가 보였다. 어떻게 좀 해달라고 엄마에게 울고불고 빌었던 것 같다.


답이 없자 엄마의 양팔을 잡고 늘어졌다. 그런데 팔이 잡아당기는 족족 늘어났다. 나는 기다란 천 쪼가리를 팽팽하게 팔에 묶을 때 하는 것처럼 팔을 마구 돌려 엄마의 늘어난 팔과 다리를, 그 여분의 길이를 계속 감아 줄여 나갔다.


그러나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는 줄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무한대로 늘어나는 물엿처럼 엄마의 팔과 다리가 늘어나고, 내가 팔을 감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엄마, 엄마...!"


나는 절실했고 애타게 불렀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가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다. 그때의 나에게 여기서 엄마가 날 구해주지 않는다면 이곳에 갇힌다는 생각은 진심이었고 꿈속에서만 가능한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나는 언제나 가능성을 믿는다. 99를 믿어도 100은 믿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기에 더없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그 어떤 상황에도 모든 가능성이 차단되지는 않는다 믿는 나에게 정말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상황이 온다면, 그건 정말로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닫자 숨이 턱 막히고 조바심이 났다. 이곳에 갇힐 순 없었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내 등허리를 계속해서 타고 올라왔고, 그건 간지러움이 아닌 해괴한 감각이었다. 뱀들이 내 몸을 타고 올라올 때 느낄만한 징그러움에 더 가까우려나?


그러나 뒤를 돌아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네 엄마인 것 같아?”


그 뒤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감각만은 생생하다. 엄마의 이 한 마디로 나는 이 인간이 내 엄마가 아니란 걸 알아챘고, 동시에 하나뿐이던 내 희망이 잘려나가는 걸 똑똑히 느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생각한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곳에 갇힌다.


뱀들이 기어 올라와 내 상체를 잠식하고, 온몸이 그들로 뒤덮여 빈틈이란 없게 되어도 영원히 심해지고 심해지는 채로 나는 방치될 것이다. 이곳에.... 나갈 곳이 없는 이 깜깜한 방에 영원한 고통만 더해진 채로 나는 갇혀버릴 것이다....


일어났을 때 느낄 수 있는 건 순수한 공포감뿐이었다. 마지막의 엄마로 보인 그것이 엄마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무언가라는, 영적인 것을 접할 때의 원초적인 공포. 그리고 그 방 안에 갇힌다는 그 공포. 희망이 없는 방에 대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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