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꽃구두
‘아고고....내 발가락이야....이쁘면 뭐하냐...나죽것네..아야야..’
조카결혼식이 끝난 후 화장실 변기에 앉아 아픈 발가락을 조물거리며 소리죽여 통증을 참아냈다.
예식 중간중간 손님맞이를 하면서 혹사당한 발가락은 얼얼해져서 감각도 없다.
가족 톡으로 차에 있는 신발 좀 가져오라고 메시지를 남기고 벗어놓은 힐을 넋 놓고 내려다본다.
옷차림에 맞는 신발도 오늘 같은 날은 신어줘야 뽀대가 나는데 뾰족 신발을 신을 수 없다니!
화사해서 버리기 아까운 힐을 집에 모셔놓고 눈으로만 신다가 예식 때 살짝 신었다.
처음엔 괜찮다가 두어 시간 지나자 발가락과 발바닥 관절뼈가 눌려 머리까지 지끈거리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양쪽 엄지발가락이 바깥쪽으로 휘어서 신발을 신을 때 통증이 심했었다.
무지외반증 수술을 하면 굽 높은 신발도 다시 신고 발이 편해질 줄 알았다.
원래부터 살집이 없는 발바닥 근육 쿠션이 수술 후 더 문제가 되었다.
발볼이 넓은 폭신하고 굽낮은 신발만 신어야 하는 팔자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오늘 혹시나 해서 신은 하이힐은 역시나 무리수였다.
딸아이가 화장실 문틈으로 신발 봉투를 내밀었다.
운전할 때 신는 얇은 로퍼다. 굽없는 신발로 갈아 신고나니 양말만 신은 것처럼 세상 살맛 난다.
감격하여 눈물이 날 뻔했다. ‘아이고...편해라..아고 아고야...’ 나는 할망구처럼 곡성 타령이다.
아까워 버리지 못해 애지중지했던 화사함을 봉지째 화장실에 벗어두고 미련 없이 걸어 나왔다.
발이 편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오는 길에 바디샵에 들렀다.
“반신욕하게?”
반신욕은 나의 최애 인생템이다. 고로 나는 반신욕 매니아다.
십여 년 넘게 애정을 갖고 즐기는 힐링 아이템을 가족들은 아무도 관심 없다.
아랫배가 차고 사계절 발이 시린 나는 반신욕을 알게 되어 그나마 건강해졌다.
시들한 야채를 물에 담가놓으면 파릇파릇해지는 것처럼 반신욕을 하고 나면 나는 굉장히 싱싱해진다.
“으윽 뜨끈뜨끈...아~ 따뜻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탄성이 입에서 저절로 터진다.
욕조에 뜨끈한 물을 배꼽 아래쯤 닿게 채우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
하이힐에 물집 잡힌 발가락들이 따끔따끔 벌겋게 부풀었다.
눈을 감은 채 하체부터 뜨듯한 열기를 느낀다.
뼈마디가 나긋나긋 풀린다.
세상사 다 내려놔도 좋을 기분이다.
상큼한 오일향 맡으며 눈을 깊게 감고 명상하듯 복식호흡을 천천히 한다.
발가락을 아프게 해서 버리고 온 예식장 화장실 꽃구두가 오버랩 된다.
맘에 안드는 형제간 누구도 저렇게 싸서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릴 수 있는 것과 버릴 수 없는 것이 확연할 때 드는 혈연관계의 무기력감!
나는 고개를 흔들어 나쁜 기억은 다 잊어버리려 노력한다.
‘아 개운하다!.’ 나는 이 맛에 산다.
이마에 땀이 맺히기 바로 직전 상태의 이 기분이 딱 좋다.
내가 최고라고 갖다 붙이면 최고가 되는 힐링타임! 따듯한 열감을 즐기는 이 맛!!
욕조 가득 퍼지는 유칼립투스 향이 피부 속 깊이 촉촉하게 스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