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연대기-3. 나의 첫 바지통

동대문 연대기-3. 나의 첫 바지통

by 블루 캐롯






20200523_200312.jpg < 나의 첫 번째 바지통- 성수동에서 >







회사에서 짐을 챙겨 나오면서 패턴실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패턴 실장님은 시장이 처음이라 거래처를 잘 모르던 내게, 공장 섭외도 발 벗고 나서 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그런데 뜻밖의 제의를 하셨다. 거래처 중에 디자이너 구인하는 곳이 있으니 꼭 면접을 보란 것이다. 시장에서 잘 나가는 곳 중 하나이며, 공휴일도 쉬고 무엇보다 체계가 잡혀 있어서 배울 것이 많다고 하셨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연락을 받고 면접 일정을 잡았다.





면접 일정 이전에, 나는 문제의 발단이었던 바지통 생지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워싱 처가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감사하게도, 시장에서 알게 된 워싱 공장 사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그때 바지통 워싱을 할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현재는 물 빨래만 전문적으로 하시지만, 중국에서도 워싱 기술을 가르치셨던 업계의 베테랑이셨다. 공장에 준비된 것이 많이 없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도와주신 거였다. 생지를 맡기고 이틀 후 저녁, 바지통이 완성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테이블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게다가 공장장님께서 친히 각각 워싱 방법을 적어서 표시 해 주셨다. 그걸 받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두 분의 따뜻한 배려와 조언에 힘을 얻고 가는 길. 작은 용기라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지통 사건(?)의 증인이 되어 주셨던 원단 사장님께 연락이 왔다. 퇴사한 터라 다음 일자리를 걱정해 주셨다. 마침 바지통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원래는 퇴사 전 회사에 있을 때 거래처였던 워싱 공장에 테스트를 의뢰했었다. 하지만 당시 메인 거래 물량이 많지 않았던 터라, 돈도 안되고 손이 많이 가는 바지통 테스트는 해 줄 수는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후 원단 사장님께 알고 계시는 워싱 공장에 주선을 부탁드렸었다. 바지통은 두 종류의 원단으로 제작했다. 얼마 전 성수동에서 완성한 것이 난 스판, 남은 것은 스판 원단이었다. 감사하게도 사장님의 배려에 원단 업체 부장님과 함께 포천의 워싱 공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포천의 워싱 공장은 풀벌레 소리가 정겨운, 시골이라 말할 수 있는 곳에 있었다. 한눈에 봐도 큰 공장이었다. 마침 쉬는 시간이라 주차장이 있는 마당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동행한 부장님께서 워싱 공장 사장님을 모셔왔다. 인사 후 초면이지만 바지통 테스트를 부탁드리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생지 상태의 바지통과 워싱 단계를 적은 종이를 함께 보여 드렸다. 사장님은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아가씨가 적어준 이대로 말고,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 한다고 해도 본인은 구별 못해요. 그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야. 굳이 이렇게 할 필요 없어요. 디자이너가 우리한테 워싱을 지정하고 지시해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똑같이 만들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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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기초이자 중요한 토대는 선과 명암 대비다. 데님의 컬러를 나누는 톤의 콘트라스트를 보며 내가 처음 그림을 그릴 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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