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데님 로드 ( My Denim Road ) -
워싱 공장 사장님의 거절은 단호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안면이 있지도, 그렇다고 내가 메인의 가능성이 있는 샘플을 테스트하러 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곤란한 입장을 헤아리고, 돌아가기로 생각했다. 그런데 마당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 속에서 " 내가 도와줄게."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분은 공장 샘플실의 실장님이셨다. 실장님께서 오시자 사장님께서 잠시 난색을 표하시더니 "어쩔 수 없네. 우리 실장님이 하시겠다는데.... 일정 맞춰서 오세요."라며 허락해 주셨다. 나중에 실장님께 그때 왜 도와주셨는지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옛날 생각이 나서." 다음 주 월요일 오전 7시 30분. 공장 업무 시간에 맞춰 현장에서 바지통을 완성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요일은 다음날 워싱 공장 견학을 위한 채비로 분주했다. 필기도구와 현장에서 신을 장화를 비롯해 함께 나눠 먹을 간식과 음료수를 넉넉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어렵게 워싱 전문가들을 만나는 기회라, 그간 궁금한 것을 여쭤 보기 위해 질문지를 작성했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를 넘기고 있었다. 원단 업체 사장님의 배려로 우리 집과 근거리에 사셨던 대리님께서 포천까지 차로 데려다주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새벽 6시.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현장 업무를 하다가 졸 수는 없었다. 1시간만 자고 일어나려고, 알람을 5시에 맞추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아뿔싸! 시간은 오전 8시가 넘었고 부재중 전화가 6통. 카톡 메시지에는 대리님께서 기다리다가 회사로 출근한다는 내용이었다. 황급히 원단 회사 관계자 분들과 워싱 공장 사장님께 연락해서 사과드렸다. 나는 귀한 배려를 늦잠으로 놓쳐 버리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더 황당했던 건, 알람이 소리가 아닌 진동으로 맞춰져 있었다. 기존에 있던 알람 설정에 숫자를 바꿔 놓고 잠들었는데, 하필 그것이 단 하나 있던 진동 알람이었다. 전화 상태마저 무음이라 걸려온 전화벨 소리 조차 못 들은 것이다. 기회는 날아갔고, 내 부주의 때문에 애써주신 많은 분들께 너무 죄송했다.
허탈함에 오전을 보내고 있을 때 면접 예정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 오후에 급하게 면접을 볼 수 있는 지를 물었다. 우선 마음을 가다듬고 면접을 보고 갔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아침에 일로 인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특히 반대를 무릎 쓰고 나를 위해 애써 주신, 워싱 실장님께 사과를 드리고 싶었다. 다음날 오전 나는 함께 먹으려 준비했던 간식과 음료수를 택시에 싣고, 포천으로 향했다. 뵙지 못하면 사무실에 간식이라도 전달해 드리려 한 것이다. 워싱 공장에 도착해서 사무실로 갔다. 잠시 실장님을 뵙게 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쭤 보았다. 얼마 후 실장님께서 사무실로 오셨다. 늦잠으로 약속 시간에 못 온 부분을 사과드렸다.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셨다. 그리고 샘플 일정이 한가해졌다며,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현장에 와서 바지통을 완성하자고 하셨다. 다시 주신 기회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다음 주를 기약했다.
뜨겁게 타오른 연탄은 재가 된다. 스톤워싱( stone washing )을 할 때 사용되는 부석은 데님과 마찰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마모된 돌은 작디작은 돌이 되고 가루를 남긴다. 쓰임새를 다한 연탄과 부석은 다르게 생겼지만 같은 존재다. 제 몸이 한순간 불타오르거나 부서질지언정 두려워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