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연대기-2.출발과 발단

- 나의 데님 로드 ( My Denim Road ) -

by 블루 캐롯




조선일보 사진.jpg < 동대문 DDP의 야경 - 사진출처: 조선일보 >








사장님께서는 데님 디자이너 출신으로 동대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거래처에 함께 방문하여 인사드리며 업무를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 보지 못 한 새로운 현장을 보게 되었다. 바로 완성 공장(또는 완성 집)이다. 완성 공장은 청바지 생산 공정의 맨 마지막 단계를 하는 곳이다. 실밥 정리를 시작으로 리벳과 캔톤, 텍션지와 브랜드 라벨 등을 달아 주는 후 직업이 진행된다. 동대문 도매 상가에 옷을 완성해서 바로 올려 보내 주는 곳이다. 프로모션에서는 디자인과 생산 부서가 분리되어 있었다. 완성 공장의 존재는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도였다. 기계에 캔톤을 집어넣고 바지를 제 위치에 가져다 놓으면, 경쾌하게 달려 나온다. 샘플과 브랜드 수납용 데님에 수작업으로 소량의 캔톤과 리벳을 달아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대량의 옷이 작업되는 현장을 보니 시장에 왔다는 게 비로소 실감 난다.




메인 봉제 공장을 방문할 때였다. 공장 사장님을 포함한 세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꼼꼼한 봉제 퀄리티로 가장 오래된 거래처였다. 작업지시서보다는 현장의 업무 편의에 맞게 봉제 방법을 바꾸시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서 관찰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봉제 시 돌발 상황보다 당황스러웠던 건, 메인으로 발주하는 원단 이외에 내게 별도로 부탁해서 보내 달라고 요구하실 때였다. 이유를 여쭤봐도 알 필요 없다고 둘러대셨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장님께 보고 드리고 나중에 안 사실은 이랬다. 본인이 사적으로 필요한 옷을 만들기 위해 원단을 요청했고, 메인 생산 옷의 워싱을 보낼 때 같이 끼워 보내려고 하셨던 거다. 사장님께서는 이렇게 자잘하게 공장에서 요청하는 원단들도 모두 명세서에 올려져 계산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다행히 사장님의 전화 후엔 이 같은 문제로 원단을 요청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입사한 곳은 데님을 기반으로 다이마루 및 직기 의류를 전개하는 토털 브랜드였다.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가게 일을 맡아서 하시는 사장님은, 사무실에도 나오셨기 때문에 수면 시간이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당시 디자이너는 나 하나뿐이라, 어떻게든 빨리 적응하고 매장을 안정시키는 게 중요했다. 직기와 다이마루는 매장 스타일을 잘 알고 계신 사장님의 지시 사항이 주가 됐다. 데님 디자이너로 입사했으니 스타일을 빨리 파악해서 옷을 만들어야 했다.





때마침 프로모션에 있을 때 안면이 있던 원단처 사장님을 시장에서 뵙게 되었다. 사정을 말씀 드리니 현재 브랜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원단을 2개 정도 찾아 바지통을 만들라고 하셨다. 그 원단의 '축'을 알면, 매장에 잘 맞는 디자인의 데님을 만드는데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앞서 봉제 공장에서 회사 명의로 개인용 원단을 사용하려 하신 것이 떠올랐다. 샘플 감도 아니니 내가 별도로 구매했다. 종합시장에 매장이 있는 거래처에서 두 가지 원단을 각각 1.5 yard 씩 구매했다. 재단은 했지만 집에는 봉제할 기계가 없었다. 근처 세탁소에서 하자니 비용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메인 봉제 공장에 부탁드렸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거래처 외근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 오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인 봉제공장 사장님과 사모님께서 방문하셨다. 사장님께 공임을 받기 위해 오셨다. 차를 내어 드리고 나는 근처 패턴실로 향했다. 패턴 픽업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공장 사장님 내외는 안 계셨고 나와 친분이 있는 원단처 사장님이 계셨다. 사장님께서 말을 꺼내셨다.




"방금 봉제 공장에서 뭐라고 한 줄 알아요? 00 씨가 아르바이트하는 것 같으니까, 알아보라고 했어요. 여태껏 바지통 만든 적이 없는데,공장에서 바지통 만들어 갔다고. 원단도 본인 돈으로 샀다고 하는 걸 보니 틀림없다고.이분들 말만 들었으면 내가 오해했을 텐데, 여기 원단처 사장님이 마침 같이 듣게 됐어요. 그리고 00 씨 아르바이트 때문에 만든 거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본인이 조언해 준 말 때문에 만든 거라고."




곧이어 원단처 사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갑자기 벌어진 상항에 너무 놀라 있었다.'아르바이트'는 시장에서 일하는 디자이너의 근무 형태 중 프리랜서로 일하는 걸 의미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내 친구도 바쁠 땐 두세 곳의 일을 해주었기에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건 소속된 브랜드가 있는데도, 별도로 일을 받고 이중으로 맡아 하는 걸 의미했다. 이것은 시장에서 매우 안 좋게 생각하는 일이었다.




나는 혹시나 봉제 공장에서 오해하실까 봐 바지통을 만들려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드렸었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모함을 받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만약 원단처 사장님이 오늘 사무실에 방문하지 않으셨다면, 내가 어떤 얘길 해도 믿지 않으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바지통 원단은 왜 개인 돈으로 산 거예요?"



"얼마 전 공장에서 사적으로 원단 사용 요구하신 일로, 저도 개인적 바지통 테스트이니 별도로 제가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워싱 보낼 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시장이 어떤 곳인지 00 씨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정말 별일 다 있어요. 아까 다녀간 공장 사장님은, 전에 있던 디자이너 마음에 안 들어해서 전화 통화 녹음은 물론, 꼬투리 다 잡아내서 얼마 전에 내보낸 거예요."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나와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랬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을 말했는데 거짓이 되돌아오는 현장에서 일할 수는 없었다. 다음날 나는 퇴사를 말씀드렸다. 인수인계를 하고 나갈 것을 말씀드리자, 퇴사를 언급 한 사람은, 바로 내보내는 게 철칙이라며 그럴 필요 없이 지금 그만두라고 하셨다. 내게 시장에서 디자이너로 일 할 기회를 주고, 나이가 같아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해 주신 분이었다. 그런 곳을 이렇게 떠나는 게 마음이 아팠다. 이것은 이전에 다녔던 직장들과 시장이 전혀 다른 생리의 사회라는 걸 알려주는 효시였다.








20200626_183736.jpg < 흥인지문의 밤 >



가수 비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화려한 조명'이 DDP만을 위해 도배를 한다 해도, 내안의 1순위는 여전히 흥인지문이다. 혼자서 시장조사를 갈 때 언제나 흥인지문 쪽을 보며 지나갔다. 군데군데 장식한 색색의 조명과 도로 위 자동차가 내뿜는 라이트가 어우러져 잔잔히 빛난다. DDP와 비교하면 조촐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은 내가 동대문 밤길을 다니며 미소 짓는 이유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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