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의 데님-5

- 나의 데님 로드 ( My Denim Road ) -

by 블루 캐롯




< 숙소였던 호텔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굴다리, 아톰 일러스트가 멋지다. >






2017년 12월 2일. 일본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다. 전날 시부야 푸른 동굴에 빛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이미 준비해둔 항공권이 있었기에 서둘러 짐을 챙겼다. 나리타 공항에서 오후 1시 30분 이륙 예정. 시부야역 근처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첫날 왕복 예매한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면 여유 있게 도착이 가능하다. 숙소였던 호텔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굴다리, 벽 주변 그라피티 사이엔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아톰이 그려져 있다. 처음 이 길을 보았을 때부터 좋았다. 왠지 아톰의 배웅을 받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서적과 청재킷 한 벌을 사고 남은 돈이 적었다. 아침식사와 공항 면세점에서 도쿄 바나나빵 한 상자를 사서 갈 수 있는 돈만 남겼다. 그 예산 안에서 아침을 고르다가 DOUTOR 매장 앞에 섰다. 모닝 메뉴를 보니 수제 샌드위치와 음료까지 제공했다.(음료는 8개 중 1개 택일, 내 선택은 아이스티.)







< 사진엔 빵이 타 보인다. 그러나 알맞게 구워진 상태다. >




< 갓 구운 빵으로 즉석에서 만든 샌드위치 >



저렴하게 끼니를 때우려 들어간 카페 안이 너무 아름다워서 놀랐다. 중앙에는 물이 흐르는 분수대가 있고, 그 위엔 생화 꽃이 올려져 물 위를 떠다녔다. 분수 뒤의 통유리 넘어 덜컹이는 지하철 소리는, BGM이라 해도 손색없을 만큼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 해 주었다. 나는 분수대 원탁 테이블에 앉아서 갓 구워 나온 햄에그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 시부야역 마스코트 하치코 >



< 문제의 그 티켓 >






시부야역 마스코트 '하치'의 동상. 첫날 도착했을 땐 사진 찍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떠나는 길엔 아무런 방해(?) 없이 볼 수 있었다. 토요일 오전, 출근 인원이 줄어서인지 지하철 역사가 한산했다.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기 위해 플랫폼 앞에 섰다. 오전 9시 45분 시부야역에서 출발해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면, 비행기 이륙 3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이라 면세점 구경도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도착 시간을 5분 앞두고 일본어로 방송이 나왔다. 앞에 서 있던 일본인들이 술렁거렸다. 때마침 지나가는 역무원에게 무엇인가 물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플랫폼을 떠났다. 본능적으로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무원에게 확인해 보니 사고 발생으로 운행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나중에 확인해 보니 9시쯤 사람이 철로에 떨어져 운행이 중단된 거였다.) 그는 니포리 역으로 가서 케이세이 라인으로 갈아탄 후 나리타공항으로 가라고 말했다. 아!... 생각지도 못한 우발적 상황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러다가 비행기를 놓치면 어쩌지?!



니포리 역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1라인의 야마노테선으로 왔다. 긴박한 상황에 혹시나 노선을 잘못 탈까 봐 플랫폼 앞에 있던 역무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물었다. 그런데 4라인에서 타야 하는 나리타 익스프레스 표를 갖고 왜 여기에 있냐고 화를 내며 돌아가라고 했다. 사고가 나서 탈 수 없다고 말하니 그런 일 없다며 말을 끊었다.



그 사이 지하철이 몇 차례 지나가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청년이 다가와 자초지종을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이해하고는, 다른 역무원을 찾아 주었다. 다시 상황을 설명했고, 다행히 열차 사고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공항에 갈 수 있는 환승 구간을 다시 한번 천천히 알려 주었다. 이 두 분의 친절한 도움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무사히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 설명이 잘 되어 있어 티켓 구매가 편리했다. >



니포리 역에 도착하니 나리타 익스프레스의 취소로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매표소 앞에서 줄을 섰다. 차례가 되어 표를 보여주니 공항으로 가는 두 가지 차편 중 하나의 표를 구매하고, 운행 취소된 표는 12월 13일까지 기간이 남아 있으니 원하는 날 사용하라고 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환불을 요청하니 티켓은 발권 한 곳에서만 환불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 이 작은 승차권으로 나리타 공항을 갈 수 있었다. >





남은 돈이 빠듯한 상황에서 간신히 1,030엔짜리 티켓을 살 수 있었다. 공항까지 80분이 소요됐다. 아슬아슬하게 비행기 출발시간 40분을 남기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서둘러 나리타 익스프레스 티켓 환불을 위해 매표소로 갔다. 사고로 운행 취소된 표를 제시했으나 사유와 이동 경로를 다시 한번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시간은 촉박한데 일본어는 부족하고, 뒤에선 대기자가 줄 서서 기다렸다. 재빨리 다시 맨 뒤로 섰다. 그리고 상황 설명을 번역해서 일본어로 보여 주었다. 그제야 취소된 티켓을 받고 환불이 이뤄졌다. 그런데 그 금액이 무려 3,010엔. 왕복으로 4,000엔을 주고 구매했는데, 절반이 넘는 가격을 보상해 준 것이다. 예상보다 많은 금액을 받고 면세점에서 도쿄 바나나 빵과 말차 맛 빵, 버터쿠키를 살 수 있었다.




< 데님 잡지 부록으로 2개의 데님 전용 세제가 들어 있었다. >






출국 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했다. 순서가 되자 기내용 가방을 올리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따로 호명한다. 그리고 지정된 위치에 팔다리를 벌리고 있으라고...포즈를 취하자, 장갑 낀 여성이 다가와 몸수색을 했다. 바로 옆에선 내 캐리어가 속속들이 파헤쳐졌다. 영화에서나 보던걸 내가 겪을 줄이야. 영문도 모른 채 찝찝한 기분을 안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열차 사고에 이어 공항에서 몸수색을 받는 범죄자 취급이라니.



한국에 돌아와 시간이 좀 흐른 뒤 문뜩 짚이는 게 있었다. 바로 일본 서점에서 구매한 데님 잡지의 부록이었다. 액체로 된 데님 전용 세제가 2개로 나뉘어 종이 케이스에 들어 있었는데 아마도 이걸 유해 물질로 인식하고 몸수색까지 한 것 같다. 파란만장했던 일본 방문기는 이후에 다른 나라를 혼자 가더라도, 돌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경험을 마련해 주었다. 짧지만 이토록 강렬한 추억을 안고서.






< 3,010엔의 수확물 ^^ >



열차 사고로 환불받은 3,010엔으로 예정에 없던 풍성한 수확이 생겼다. 도쿄 바나나 빵과 말차 맛 빵 그리고 버터 쿠키도 샀다. 그림엔 없지만 낫개로 판매한 도라야끼(단팥빵) 1개도 구매해, 비행기 안에서 먹었다. 그러고도 동전이 조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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