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지만 설계는 안 할 거예요 -7화
*이어지는 형식의 글이다 보니 이전의 글을 읽은 후, 이번화를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blue-scene/15
- 무슨 과 나오셨어요?
- 건축학과요.
- 그럼 집 짓고 막 도면 그리고 그런 일 하겠네요?
- 아니요. 그것 빼고 다 해요.
오롯하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보통의 20대들이 그렇듯,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막막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길도 없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3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겨울이라는 날씨 때문인지, 무엇을 하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보통의 백수가 그러하듯, 늦게까지 휴대폰을 보면서 밤을 꼴딱 새우고, 아침이 되어서야 잠에 들고. 오후가 되어 일어나 코딱지만 한 작은 자취방의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그렇게 하루를 버리기도 하면서.
또 어떤 날은 이력서나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좌절을 느끼기도 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이 답답해질 때쯤 부랴부랴 짐을 싸서 스타벅스로 향하고. 남들이 전부 출근한 평일 오전의 스타벅스는 언제 가도 앉을자리가 있다.
정리되지 않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만지다 보니 더 엉망진창으로 꼬여 길을 잃어버린 포트폴리오. 그 어질러진 모든 것들은 마치 내 불안한 마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주변에서는 취업할 수 있을 거다, 퇴사한 김에 여행이나 떠나라, 20대인데 불안한 게 당연하다는 말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좀 더 현명하고, 가치 있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것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었다.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나서기로 결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이든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단단한 사람도 상처받고, 아무리 의지가 센 사람도 꺾이게 되어 있다.
서울에 올라오고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바빴고, 힘들었다. 힘들었다는 말을 싫어하다가도 달리 표현할 동사가 없다. 힘든 건 사실이니까.
매번 지난 회사를 다니면서 주변사람에게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을 티 내며 약해 보이는 나의 모습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되었다.
자책만 늘어난 상태에서 퇴사를 하고 나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아무런 과제나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를 느끼게 되었다.
오롯한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처음 이런 시간을 가져본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대부분의 요즘 20대 들이 그렇듯, 아무런 억압 없는 시간이 주어졌을대 때,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이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를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시키는 대로 학교를 다녔으며, 시키는 대로 과제를 하고 발표를 했다. 시키는 대로 기계처럼 대답했고, 취향 따위는 없었다. 뭘 잘할 수 있을지, 뭘 좋아하는지를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이 조금은 슬퍼졌다.
직업이 없는 백수라는 상태보다,
이 남아도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글을 썼다. 미뤄두었던 소설책을 읽었다. 영화를 실컷 보았다. 내키는 것만 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가고, 내가 읽고 싶은 것들만 읽고,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썼다.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가 원하던 게,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