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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별 Dec 30. 2020

소문 듣고 시작, 끝까지 정주행
<경이로운 소문>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더라

(* 이 글은 약간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나, 작품 전체적인 설정에 대한 설명 정도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 시작해서, 끝을 보다


크리스마스 연휴, 연휴에는 역시 작품 하나 골라서 정주행 하는 게 꿀이다~!

가족들이 모여 정주행 할 작품을 고른다. 두 개 중 하나, <스위트 홈> vs <경이로운 소문>.

원래 전자가 우세했으나, 무서운 걸 못 보는 사람이 한 분 계셔서..(ㅡㅡ;)

덜 무서운 것 같다고 하여 후자 승리. 괴물 대항으로 악귀가 승이라니..(좀 이상한 듯..).


여하튼, 소문으로만 듣던 <경이로운 소문>을 보기 시작한다~!

넷플릭스로 보는데, 1회, 2회 -> 다음 편 -> 또 다음 편 -> 한 번만 더. 더... 다 봤다.

8회까지 봤는데 아쉽고, 다 보고 나니 왜 대박 드라마가 되었는지 알겠는 뭐 그런?~!!ㅎ


<경이로운 소문>은 웹툰 원작(현재, 시즌2 40화까지 연재중)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만든 드라마이다.

처음 드라마의 포스터나 티저 영상을 보면, 다소 촌스러운 빨간 츄리닝복이 먼저 눈에 확 들어온다.

오히려 웹툰의 그림이 나아 보일 정도니, 그런 어설픔에 스산함보다는 친근감이 든달까..?ㅎ


소재-장르는 '악귀 퇴치 히어로물'인데, 히어로들의 슈트(suit)가 오히려 긴장을 풀어주니 잠시 무장해제.

그 외에도 원작 그대로의 웹툰스러운 설정, 대사, 연기, 모든 요소들이 재미를 더하며 몰입하게 만든다.

퇴마록인 듯 퇴마록 아닌, 식상하지 않는 설정과 상황과 장면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악귀 퇴치물이라..



작품의 기본 설정은 이렇다. 저승을 탈출한 악귀들이 현실 세상에서 악인의 몸에 기생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악귀들을 추노처럼 찾아내서 저승으로 소환하는 역할을 하는 빨간 츄리닝의 주인공 네 명이 있다.

위 그림 왼쪽부터 도하나, 가모탁, 추매옥, 그리고 1st 주인공 소문. 그렇다, 소문은 루머가 아니다! ㅡㅡㅋ


퇴마사 또는 악귀를 사냥하는 그들은 '카운터'라 불린다. 그리고 그들의 아지트는 '언니네 국숫집'.

추매옥 여사를 중심으로 국수를 파는 그들은, <극한직업>에서 닭을 파는 형사들 같은 존재들이다.


국수가 엄청 맛있어서 대기줄이 장난 아니고,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는 맛집이라는 건 뭐지 싶고, 

더 웃긴 건 재료가 남아있어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짜짜짜짜 짜앙~가 엄청난 기운이~),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바로 닫고 출동하는 골 때리는 가게 주인들이라는 것이다. 실상은? 악귀 잡으러 출동~!

 



# 배우-역할에 대하여 : 카운터, 융인, 악귀


빨츄(뺠간 츄리닝) 카운터 네 명은 다음의 배우들이 맡았다: 도하나(김세정), 가모탁(유준상), 추매옥(염혜란), 소문(조병규), 사실 한 명 더 있다. 모든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후견인이자 호구 최장물(안석환).ㅋ

원작과 비교하면, 가모탁은 좀 더 불량스럽게, 추매옥은 좀 더 지긋한 노인으로 그려져야 할 것 같긴 하다.


(* 기본적으로 지니는 능력 외에, 카운터 각각의 스페셜 능력에 대해서는 작품에서 확인하는 재미를~?!ㅎ)



사실, 캐스팅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고, 이해는 된다.

딱 볼 때, 원탑 스타가 보이지 않는다. 중견배우 세 분(안석환, 유준상, 염혜란)이 든든하게 받쳐주긴 하지만, 주인공은 조병규 씨다. 아직 <SKY 캐슬>의 까칠남 둘째 이미지가 가시지 않은 것도 있고.. 비단 그뿐 아니라, 도깨비 신부의 못된 이모 염혜란 씨나, 아이돌 그룹 구구단의 김세정 씨까지, 선입견은 참 무서운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런 캐스팅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반전으로 선입견을 부숴버렸으니까~!

연기로 승부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좋았다. 그 배역에 몰입하는 진정성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연극-뮤지컬 무대에서 오랫동안 다져진 실력으로 단무지(단순/무식/지x) 덩치 역할을 하는 유준상 씨나,

모두의 엄마 역할을 하는 염혜란 씨는 물론이고, 오디션 출신 아이돌이었나 싶을 정도로 멋진 연기를 선보인 김세정 씨, 무엇보다 같은 고등학생인데 까칠에서 순수-착함으로 완전 변신한 조병규 씨의 연기가 놀라웠다.


카운터들 외에 융인과 악귀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 또한 압도적이었다.

소문의 파트너이자 융인들 대장 역할을 하는 문숙 씨(위겐)가,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내공으로 연기하는 모습,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배우들이지만, 악귀의 역할에 몰입해서 소름 끼칠 정도로 연기하는 모습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엄청난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표정, 내면연기, 진지함-코믹-슬픔-고통-광기의 장면들은 훌륭하다 못해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의 체험을 선사했다.


카운터, 융인, 악귀, 하늘과 땅에 걸쳐있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놀랍고 신기한(miracle & wonder)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코마 상태에서 임사체험(臨死體驗, near-death experience(NDE))을 통해 덤으로 생명을 얻은 카운터들과 저승을 탈출한 악귀들의 힘겨루기를 다루는,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신화-전설 같은 이야기.


종교의 유무를 떠나 역시 사람들은 보이는 현실 너머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 '융'으로 불리는 중간세계


꽤 신선하게 다가오는 융이라는 장소와 그곳에 거주하는(?) 융인들을 잠시 살펴보자.

쉽게 설명하면, 이승에서의 저승사자가 카운터라면, (중간) 저승에서의 저승사자 또는 천사가 융인?

그것도 참 애매한 게, 융인은 코마 상태 인간 카운터에 빙의한 파트너로서의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독립적인(independent) 존재가 아닌 의존적인 존재라는 점. 더군다나 그들도 한 때 인간이었다는 참 인간적인 설정.


그럼에도 그들은 중간단계 저승인 '융'에서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영혼을 접수하는 출입국 관리소인 저승 융의 관리자들, 나아가 영혼들을 위(천국?) 또는 아래(지옥?)로 보낼 수 있는 권한자들이라는 독특한 설정.


 


재미있는 건, '융'이라는 가상공간-저승의 이미지이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소문이(카운터)와 위겐(융인)이 파트너가 되어 융에서 만날 때, 개인적으로 떠올린 장면이 몇 개 있다: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에서 해리와 덤블도어가 만나는 새하얀 기차역 장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 엔드 게임>에서 소울스톤을 얻을 때 펼쳐지는 얕은 물의 배경, 

그리고 원작 웹툰에서 묘사하는 융으로 가는 길은 <호텔 델루나>에서의 삼도천 터널과 많이 닮아있다.


<도깨비>에서 영혼들이 최종 목적지에 가기 전에 들르는 저승사자의 찻집 같은 중간세계 '융',

가톨릭에서 영혼이 정화되는 곳으로 언급하는 연옥은 아닌 듯하지만, 그래도 주목할만한 건,

인간들은 꿈에서든, 무의식에서든, 종교적으로든, 중간세계를 상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융'이라는 단어가 유명한 학자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정신의학자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그는 정신분석학하면 먼저 떠오르는 프로이트, 사회심리학의 대가 아들러와 더불어 심리학에 있어서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인간 내면의 의식, 무의식, 그 둘의 충돌, 집단 무의식 등을 이야기한 그의 이름과 같다는 건 우연일까?ㅎ 


중요한 건, '융'이라는 단어를 통해, 볼 수 없고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상상한다는 것 아닐까?




#  어디서 많이 본듯한 '사이다' 드라마


어떤 작품을 볼 때, 문득 느껴지는 기시감이 있다.

그건 감독님이 오마주를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시청자가 특정 지점에서 느끼는 데자뷰일 수도 있다.


기시감(=데자뷰)에 의한 <경이로운 소문>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악귀'가 등장하는 <열혈사제>.



<경이로운 소문>의 중진시는 <열혈사제>의 구담시다. (cf. <배트맨>에서의 고담, 성서에서의 소돔과 고모라)

아니, <경이로운 소문>에서는 오히려 나쁜 놈들의 세계를 더 폭넓게, 그리고 깊게 보여준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가상의 중진시와 구담시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부동산'(극 중 대사다)의 강남이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갑'은 비리로 얽히고설켜있는 국회의원, 시장, 경찰서장, 기업가 가면을 쓴 조폭이다.


<경이로운 소문>에서 '넓고, 깊게' 보여준다는 건 다음과 같다: 먼저, 정치인들 뒤를 봐주는 기업(조폭)을 동경하는 악의 잡초들이 고등학교에서 일진으로 악행을 일삼고 있다는 것, 어릴 때부터 나쁜 짓만 하던 더러운 정치인-재벌의 자식 놈들이 커서 서로의 비리를 덮어주며 똑같은 짓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모습 자체가 '악귀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악귀 = 악인'이라는 설정. 잘못된 욕망, 더러운 돈, 그와 함께 품고 있는 폭력성과 살의 등 온갖 죄악이 뒤엉켜 있는 모습. 오죽하면 이런 대사가 귀를 때릴까, "사람이 악마다."


전국에서 악귀와 악인이 가장 많은 중진시와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사이다'인 이유는?

지지부진하게 끌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못된 건 즉시 바로잡는다. 응징할 건 바로 응징하고 팰 건 팬다!

가정폭력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폭력범(약자들에게 갑질 하는 놈들 포함), 묻지마 살인범, 욕망에 눈이 먼 살인녀, 인간사회에 사회악으로 존재하고 있는 이런 악귀-악당-악인을 퇴치하는 카운터들의 이야기가 시원하다!


그리고 그 슈퍼히어로가 부모님 없이, 장애가 있지만, 착한 심성으로 자란 소년이란 설정이 짠한 감동을 준다!



하루하루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는 요즘,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원함과 즐거움을 주는 드라마 한 편이 고맙다.

가진 자들의 갑질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을 지켜주는 슈퍼히어로의 이야기가 힘이 된다.

동화 속 권선징악의 시적 정의(poetic justice)일지언정, 조그만 정의 하나하나가 실현되는 세상을 픽션으로나마 보여주는 작품이 감동을 선사한다.


덤으로 받은 생으로 다시 목숨을 걸고 싸우며 희생하는 그들, 능력이 좀 더 있기에 더 힘들게 사는 정의의 사도들, 우리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아픈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고뇌를 안고 살아가는 카운터들,


각 회차마다 위기의 순간 등장해서 서로를 돕는 카운터들의 모습, 특히 소문이가 자신의 능력을 점차 발휘하며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함성(악귀들을 향한 고함 + 요즘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풀기)이 터져 나온다, "다 죽었어!!" 이제는 소문이 다 나버린 소문이네 슈퍼히어로 가족을 응원한다~!


돌아오는 주말, 한 주 결방했던 <경이로운 소문> 볼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ㅋ


(* <경이로운 소문>은 넷플릭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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