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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고양이

책 속, 문장

by 진주현



P. 90
작정은 없었어도 나도 실은 슬리핑을 이용했다.
나의 그리움을 집어넣었다. 나의 애도를 슬쩍 넣었다. 애도는 살아있는 존재들의 몫이다.
애정과 애도는 한 몸이다. 애정이 없으면 애도도 없다. 애도의 가장 중요한 성분은 사랑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나에게 사랑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슬리핑도 그의 오랜 지인이니 애도를 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나는 긴 문장을 쓸 수 없으니 나머지는 슬리핑의 선택이다. 하지만 계속 이런 상태라면, 이대로 글이 멈춰버리면 애도의 꼬리는 잘려나가고 말 것이다. 슬리핑은 내 첫 문장을 자신이 썼다고 믿고 있으니 내가 첫 문장에 불어넣은 공기 지침서를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는 건 분명한데 날이 지날수록 부풀기만 하는 기묘한 초조감과 슬리핑에 대한 원망으로 아무리 양을 세 봐도 잠을 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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