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인문학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작년에 대학을 입학한 딸아이가 미팅을 하면서 만났던 남자를 문과남과 이과남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문과남은 말을 잘하는 편이었지만 미팅 때 했던 말들이 나중에 알고 보면 대부분 과장되어 있고 거짓말이 섞여 있는 반면에 이과남은 말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솔직한 편이고 좀 더 순수해 보였다고 했다. 딸아이도 이과여서인지 하필 그런 허세 문과남과 순수 이과남이 나와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재미있고 의미 있는 비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이국종 교수가 군의관 강연에서 “조선 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 놈들이 해 먹는 나라다. 이게 수천 년간 이어진 조선 반도의 DNA고 이건 바뀌지 않는다.”라고 했던 작심 발언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과는 인문학을 많이 접하다 보니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말 잘하는 거짓말쟁이들이고 이과는 인간관계보다 과학 현상에 더 관심이 많아 표현 방법이 서투르고 순수한 사람이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싶지는 않다. 현실에는 철학과 문학과 같은 인문학적 관점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의사나 과학자 같은 이과 성향의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공동체에서 어떤 학문을 배우느냐 보다 인간의 성품에 더 많은 관여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김상욱의 과학공부>에서 찾았다. 이번 주 새온독에서 함께 읽은 책이다. 새온독의 영향으로 과학에 관심이 생긴 선배님이 이 책을 선정해 주시고 센스 있는 회장님이 4월 21일 과학의 날이 있는 이번 주에 이 책을 넣어 놓았다. 지난주에 읽었던 넥서스의 인공지능과 과학의 자기 정화 능력에 대한 이야기와 이어지는 부분도 있어 책과 책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상욱 작가는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이자 영상이나 언론 매체에 많이 등장하는 꽤 친숙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다. 이과남 혹은 과학자는 말과 글이 서투르다는 고정관념을 깨닫게 해주는 분이기도 하다. 그는 어려운 과학의 개념을 복잡한 수식 없이 비유를 통해 차근차근 쉽게 설명하고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과학적 사고를 강조한다.
물론 김상욱 교수도 한때 물리제국주의자였다고 고백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데 문학이나 철학, 예술은 필요 없고, 물리학만 완전히 이해하면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휩싸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는 물리학자로서 세상을 전부 이해하고 싶었지만 결국 도달한 결론은 세상을 이해하려면 물리를 넘어 다양한 학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는 책이 바로 <김상욱의 과학공부>다. 저자는 분명 물리학자인데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이 보이고 문학적 소양과 현대 미술을 바라보는 감성도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시와 물리 법칙에서 압축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내어 시와 물리법칙이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한다. 철학은 자연 그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고 자연을 이해하는 것은 과학이니 과학이 곧 철학이 된다고도 말한다.
물리학은 세상 모든 현상을 운동으로 기술하는 학문이라고 한 저자의 말에 감탄사가 나왔다. 물리학의 숲을 보여주는 이 한 문장으로 세상의 모든 운동이 예사롭지 않게 보일 것만 같다. 아이작 뉴턴이 사과의 움직임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물리학자에게 운동이란 실험과 관찰의 대상일 것이다.
저자는 물리에서 의미하는 운동인 줄 알고 찾아보았던 데릭 시버스의 <운동을 시작하는 방법>이라는 TED 강연을 보고 심장이 멎는 듯한 깨달음을 얻는다. 강연 내용은 이렇다. 공원에서 웃통을 벗고 있던 한 남자가 이상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걸 보고 다른 사람이 같이 춤을 춘다. 세 번째 참가한 사람은 심지어 자기 무리를 손짓으로 불러들인다. 결국은 공원의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게 되는 영상을 보여주며 강연자 시버스는 리더십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 사람의 리더십이 과소평가된 면이 있는데 그는 첫 번째 사람을 미치광이에서 리더로 변모시켰다고 말한다.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운동과는 다른 영상이었지만 저자는 물리학의 운동과 비슷한 점을 찾아낸다. 하나의 물체는 홀로 힘을 만들 수 없고 두 번째 물체가 존재할 때 첫 번째 물체의 단조로운 운동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강연자 시버스가 강조했던 두 번째 사람의 행동은 군중심리에 변화를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첫 번째 물체에 변화를 주는 두 번째 물체처럼.
2년 전에 김상욱 교수와 유시민 작가의 콜라보 북토크 강연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사인도 받고 유용하고 재밌는 강연에 작가님들에게 더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김상욱 교수는 과학자 입장에서 인문학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유시민 작가는 인문학 입장에서 과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다시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공동체에서 어떤 학문을 배우느냐보다 인성에 더 많은 관여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름을 이해하고 가치를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바로 포용력이다. 물리제국주의자에서 벗어나 철학하는 과학자 김상욱 교수는 어쩌면 물리학이 최고라 여기는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군중을 일깨우는 용감한 두 번째 사람이 아닐까. 과학과 인문학을 친구로 만드는 포용력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과학자들이 결국 지구를 살릴 것이라 감히 예언해 본다.
우리가 아는 한
이 광활한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지혜를 모아야 하는 우주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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