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선택
요즘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타일 그림이 유행이다. GPT-4에게 자신의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면 AI가 마치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에서 튀어나온 듯한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바꿔주고 있다. 이 새로운 기능에 사람들은 열광하면서 ChatGPT 가입자 수와 사용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지브리 애니 속 주인공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혹은 내 사진 속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을 동화처럼 만들어 준다는 컨셉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다른 AI를 사용하던 나도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바꿔준다는 말에 ChatGPT 앱을 설치하고 추억의 가족사진을 소환하여 시도해 보았다. 사진 속 인물들과 비슷하지만 더 귀엽고 예쁘게 그려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과 배경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도 놀라웠다. 가족들과 결과물을 공유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근사한 결과물과 공유 과정에서 일어난 즐거운 감정들 덕분인지 AI가 더 친근하고 좋은 감정으로 느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브리 스타일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웹 디자인 업계나 웹 디자이너들에게는 좋은 소식만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AI에게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은 모습을 말로 설명하면 몇 분 이내로 결과물을 바로 만들어주니 어렵게 디자인할 필요가 없다. 삽화나 배경 이미지 제작과 같은 영역에서 디자이너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 AI에게 창의적인 활동을 지시하다 보면 우리 인간의 창의성도 줄어들 수도 있다.
이런 일차원적인 염려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AI가 우리의 사진을 어디에 사용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사진을 내주었지만 사용처에 대해서 혹은 사진 정보가 저장되는지 폐기되는지 알 수 없다. GPT-4를 개발한 회사인 OpenAI가 왜 이런 서비스를 개발했는지 그 의도가 궁금하다.
이렇게 AI가 일상으로 들어온 시대에 우리는 유행에 휩쓸려 혹은 알고리즘에 휘둘려 우리의 소중한 정보와 시간을 빅테크 기업에게 빼앗기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시기에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나의 생각대로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을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2주에 걸쳐 독서모임에서 읽었다.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다. 684쪽의 만만치 않은 분량에다 정보의 역사적 배경부터 AI 발전으로 인한 부작용을 디스토피아적 입장으로 서술되어 있어 기분 좋게 읽을 수만은 없었지만 하라리의 전작 <사피엔스>를 읽었던 내공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쉽지 않은 벽돌책을 과감하게 선택해 주시고 2주 동안 이끌어주신 리더 선배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이 책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실존위기연구센터 석학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밌는 사실은 하라리가 <넥서스> 출간 기념과 APEC 2025 경주 정상회의 사전 문화 행사 참여를 위해 지난달에 우리나라에 방문하여 강연을 하고 여러 방송에 출연하였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쯤 여러 매체에서 하라리가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또한 새온독의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믿으면서 즐겁게 보고 있다.
인류 역사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통찰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사피엔스>부터 인공지능, 생명공학 기술 발전에 따른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담고 있는 <호모 데우스>, 그리고 이 책 <넥서스>까지 역사 속에서의 인공지능 시대 흐름을 이 세 권의 책으로 연결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그대로이고
무엇이 변하며 어떻게 변하는지 가르쳐준다.
P.30
이 책은 정보 네트워크의 발전을 인류 역사와 함께 조망하며 인공지능 시대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보 네트워크가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정보 네트워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진실 발견과 질서 유지라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체주의를 예를 들면서 네트워크가 진실보다 질서를 우선시할 경우,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지만 그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도 한다.
흥미롭게도 전체주의는 19세기 산업 경제가 부상하면서 정부들이 훨씬 더 많은 행정 관료를 고용하고 전신과 라디오 같은 새로운 정보 기술 덕분에 이 모든 관료를 빠르게 연결하고 감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현대 기술은 대규모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전체주의도 가능하게 했다. 즉, 기술은 단지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뿐이며, 어느 쪽으로 갈지는 우리에게 달렸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새로운 기술은 종종 역사적 재앙으로 이어지는 데
이는 그 기술이 본질적으로 나빠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P.433
진실을 아는 일은 복잡하고 두려운 일이지만 현명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다. 질서 유지 명목으로 진실을 감추는 위정자들의 행태와 정보 기술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력과 시장 가치를 지닌 소수의 거대 기업인 빅테크 기업들의 속셈을 알게 되니 그동안 즐겨 사용하던 각종 SNS 플랫폼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모르는 낯선 오류까지도 점검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하라리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최근에 다큐 <어른 김장하>와 김장하 어르신을 취재한 내용을 담은 책 <줬으면 그만이지>를 감명 깊게 보았다. 성공한 한약사 김장하 어르신은 다양한 방면에 남모르게 기부를 하시면서 평생 자동차 없이 청렴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선한 인간과 신의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빅테크 기업과 각 나라의 리더들이 김장하 어르신처럼 진짜 어른답게 행동하고 살아가면 좋겠다. 김장하 어르신의 인생관처럼 앙불괴어천하고 부부작어인 즉,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고개를 내려 사람들한테도 부끄러울 게 없는 삶을 지향한다면 AI시대에도 걱정 없는 미래를 만나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