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 귀스타브 르봉

<군중심리> 대한민국에서 성숙한 군중으로 살아남기

by 박소형
주문 :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인용된 순간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상황들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시 우리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결과에 안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윤석열 파면.jpg



우리나라 거의 모든 국민이 평화로운 시기에 비상계엄이라는 위법적인 상황을 영상으로 확인했지만 위법을 저지른 대통령을 끌어내리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칭 엘리트라 불리는 권력층은 대통령의 입장을 열심히 대변하면서 대중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둘로 나뉘어 탄핵 찬반 집회로 어수선했다.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야광봉을 흔들며 질서 있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집회를 이어 나갔다. 반면에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 일부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난입하여 폭력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 민족이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며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다고 자부하던 단일 민족, 대한국민이 똑같은 상황을 보고도 극명하게 나뉘어서 서로 다른 군중 세력을 이루는 모습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또 한 번 통했는지 대통령이 파면되었던 주에 귀스타브 르봉의 <군중심리>로 더 잘 알려진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를 독서 모임에서 읽었다. 리더 선배님은 현재 우리나라의 답답한 상황과 평소에 군중심리에 잘 휘말리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선택했다고 말씀하셨다. 시기적절한 책 선택에 모두가 감탄했다.



썸네일-087.png



세상에는 좋은 책들이 훨씬 더 많지만 읽고 그대로 다 받아들인다면 위험한 책도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어나갈 때 위험한 책이라 생각했다. 사실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들은 이 책을 읽고 르봉의 이론을 활용하여 대중을 조작하고 전체주의 체제를 구축했다고 한다. 사회 지배층에 속하는 엘리트인 저자가 지적 수준은 열등하나 행동력은 뛰어난 군중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지도자들을 위해 쓴 책이라는 느낌에 기분 좋게 읽히지 않았다. 사회진화론적 관점에서 여성, 미개인, 아동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저자의 시선도 불편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책에 대한 반감이 완화되면서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는 부분이 꽤 늘어갔다. 이 책은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그 중간 어디쯤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쯤되면 이 책의 저자 귀스타브 르봉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었던 1841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르봉은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참전하고 1871년에 급진적인 사회주의 자치 정부인 파리 코뮌을 목격한 뒤 1895년에는 이 책 <군중심리>를 출간했다. 저자는 군주를 무너뜨리고 군중이 세력을 형성하여 권력을 갖게 되는 격변의 시대적 상황을 겪으면서 관찰을 통해 군중의 심리와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여 그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지방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르봉은 엘리트 지배층의 입장에서 군중을 바라보고 서술하고 있다.



르봉은 군중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만 행동을 보면 개인보다 더 나을 때도 있고 더 나쁠 때도 있다고 말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목격했던 총을 든 군인들에 맞서는 용감한 군중과 무책임한 군중의 일원이 되어 폭력시위에 가담하는 양면적인 군중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중은 구성원 개인의 평균값이나 단순한 합이 아니라,
이질적인 요소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유기체와 같다.
-P.46



이러한 특성을 갖는 군중에게 어떤 신념이나 사상을 심으려는 지도자는 확언과 반복, 전파라는 3가지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저자는 여러 차례 강조한다. 비논리적인 주장을 확언하면서 반복적으로 언론을 통해 전파하는 정치인들의 의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책은 지도자나 리더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군중의 일부인 우리도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 책은 지배층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언론의 보도와 각종 선동 매체에 휩쓸려 어리석은 군중으로 남을 것인가, 성숙한 군중의 일원으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인가. 이는 2025년 6월 3일,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그 날, 우리 손에 달렸다.



군중의 무의식은 일견 투박하고 열등해 보이지만,
그 속에 잠재된 힘은 인간의 능력으로 가늠하기 힘들 만큼 강력하다.

본질을 알 수는 없지만 그 위력만큼은 명확한 힘,
어떤 이들이 ‘죽은 자의 목소리’라 부르는 그런 종류의 힘 말이다.(…)

우리가 살아갈 이 시대는 진정한 ‘군중의 시대’가 될 것이다.

-P.23
keyword
이전 10화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 김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