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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인훈의 <광장> X 영화 <쇼생크 탈출>

광장과 터널의 끝에서 이명준과 앤디가 발견한 푸른 해방

by 박소형

역사 시대의 모든 기록은 결국, 인간이 자유를 향해 벌인 투쟁의 발자취이다. 신분제도, 종교 혹은 이데올로기 등등 인간의 행위를 속박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여전히 인류는 고투 중이다. 역사 시대의 주요 변곡점들을 살펴보면, 문명을 발전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킨 동력이 바로 특정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인류 역사 시대의 모든 기록이 자유를 향한 투쟁의 발자취임을 인정할 때, 최인훈의 소설 <광장>과 영화 <쇼생크 탈출>은 시대와 장르를 달리하면서도, 인간을 억압하는 시스템과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의 고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두 주인공, 이명준과 앤디 듀프레인이 갇힌 공간과 그들이 택한 해방의 경로는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상반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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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 속 억압의 공간은 그 성격이 다르지만, 개인의 자유의지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감옥이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해방 이후 북으로 간 아버지의 대남 선전 방송으로 형사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다 남한을 탈출하여 보람 있게 청춘을 불태우고 삶다운 삶을 살기 위해 월북을 한다. 하지만 북한에서 주인공은 명준이 아니라 ‘당“이었고 아무도 위대해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즉, <광장>의 이명준은 이념과 사회 시스템에 갇혀 있는 인물이었다. 남한 사회는 사생활과 개인의 물질적 성공을 우선시하며 밀실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적인 가치와 연대를 상징하는 광장의 역할을 상실한 상태이다. 북한 사회는 전체주의와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광장을 절대적인 가치로 삼고, 개인의 내면과 사생활이라 할 수 있는 밀실을 철저히 부정하고 억압한다. 명준은 이 모순된 두 체제 사이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실존적 고통을 겪으며, 결국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자체가 없는 삶이야말로 가장 큰 억압임을 깨닫는다.


반면,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가 갇힌 공간은 물리적 감옥인 쇼생크 교도소다. 앤디는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그는 가장 큰 형벌인 자유의 박탈을 견뎌내야 했다. 이곳은 제도화된 폭력과 억압이 지배하며 수감자들의 희망과 의지마저 짓밟아 제도화된 인간으로 전락시킨다. 앤디는 신체의 구속을 당하지만, 교도소장이나 교도관의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유의지를 잃고 쇠창살에 익숙해지는 영혼의 무력감임을 알고 이에 저항한다.


두 주인공이 택한 해방의 경로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명준의 해방 공간은 푸른 광장인 바다였다. 그는 남북한 중 어디도 선택하지 않고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은혜와 자신의 딸이라고 느꼈던 두 마리의 갈매기를 보며 인류의 문명이 닿지 않는 순수한 자연 속의 자유를 갈망한다. 결국, 그가 바다로 몸을 던지는 것은 오염된 이데올로기와 선택의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해방을 향한 선택이었다. 명준에게 현실 세계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었기에, 현실을 거부하는 죽음을 택한 것이다.


앤디의 해방은 터널을 통한 탈출이다. 작은 지질학용 망치를 이용해 20년에 걸친 끈기와 희망의 결과로 파낸 이 터널은, 물리적 탈출로 이어지기 전에 이미 앤디의 내면에서 완성된 정신적 자유의지를 상징한다. 앤디의 탈출은 희망이라는 내면의 가치를 결코 포기하지 않은 인간의 승리이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방이다. 그가 교도소 방송실에서 모차르트 오페라의 선율을 교도소 전체에 울려 퍼지게 했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의 영혼을 해방시켰으며 정신적 자유를 감옥 안으로 끌어들였다. 터널은 그 해방을 현실화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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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는 달랐지만 두 주인공의 최종 종착지는 모두 푸른색으로 상징되는 공간이다.

이명준이 몸을 던진 푸른 바다는 현실의 구속을 완전히 끊어낸 초월적인 공간이다. 그에게 푸른 해방은 현실 세계가 제공하지 못하는 완전한 자유였으며, 안타깝게도 이는 극단적인 포기와 절망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앤디는 탈옥 후 멕시코의 푸른 태평양 해변에서 교도소 친구였던 레드를 만나 희망의 결실을 맺는다. 이곳은 고통과 억압이 없는, 무한하고 순수한 자유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앤디에게 푸른 해방은 고통을 이겨낸 자에게 주어지는 현실에서의 약속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광장>과 <쇼생크 탈출>은 인간에게 자유롭지 않은 삶은 곧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만, 해방의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앤디의 터널은 희망을 잃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는 의지의 승리를, 명준의 바다는 오염된 현실 자체를 거부하고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는 지식인의 비극을 보여준다. 결국 두 작품 모두를 통해 자유는 환경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인간이 끝까지 지켜내야 할 영혼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 나의 영혼은 무언가에 갇혀 있는지, 진정한 자유를 위한 푸른 해방을 향하고 있는지 다시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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