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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l 20. 2017

4. 위장

자발적 백수

수요일이다. 백수가 된 지 보름이 되었지만 수요일과 금요일은 출근하던 때처럼 일찍 일어난다. 씻고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부모님과 동생이 회사로 출발한다. 바쁜 척 부산을 떠느라 배웅도 하지 않는다. 현관문이 닫히면 멈춤. 다른 차원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릿느릿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자리를 찾아간다. 낯선 규칙으로 가득 차 있던 집을 내 리듬으로 재구성한다. 가족들이 헐래 벌떡 나간 직후에는 혼란스럽지만 조금 지나면 안정이 된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동생이 병가를 내고 사랑니를 빼고 오는 바람에 집에서 마주쳐야 했다. 미리 사정을 말해놓았기에 동생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에너지 파장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동생에게 맞춰서 무언가를 해야 하나? 내 행동이 한심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고장 난 시곗바늘이 앞으로 가지 못하고 한 눈금만을 계속 차듯 의미 없고 이상한 행동들을 반복했다. TV를 꼈다가 끄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아무것도 꺼내지 않은 채 닫고, 책을 보려고 꺼냈다가 핸드폰을 했다. 동생의 시각을 내 안으로 들여와 적합한 행동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보니 엉망진창이 됐다.


동생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의식한 것일까. 동생에게 이 정도이니 부모님과 타인들에게는 말할 나위 없다. 심각하게 타인의 눈치를 보고 줏대 있게 행동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학에서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상황과 위치에 따라 자로 잰 듯한 책임감을 부여하고 그 규격에 나를 욱여넣어왔다. 사람들은 알아서 척척 일하는 나를 책임감 있고 능력 있다고 평가했다. 결과물은 좋았을지 몰라도 나는 소진됐다. 어디까지가 견딜 수 있는 범위였고 어디부터가 억지로 한 것이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자리를 뛰쳐나왔다.


눈치를 안 보고 싶어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겨우 일주일에 이틀 출근하는 전 직장에서도 정규직들보다 더 성실했다. 지각하지 않기. 일이 생기면 상사에게 즉각 보고하기. 근무 시간에 잡담하지 않기. 간단한 청소와 설거지가 보이면 즉시 하기. 직원들과 어울려 점심시간에 잠시 카페에 가는 것조차 근무지 무단이탈이 아닌가 걱정했다. 프리랜서니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도통 그러질 못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내 시간은 모두 회사의 것이라는 긴장감으로 일했다.


행동 하나에 끼어있는 수많은 관점들. 이래라저래라 하는 시각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시각은 사라졌다. 어렸을 때부터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더욱 심해졌고 낯선 사람을 사귀는 것도 힘들어졌다. 자아감이 약하다 못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혼자 있어야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알맞은지를 알 수 있었다. 애써서 나에게 집중해야만 내가 여기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존재는 너무도 쉽게 나를 파괴한다. 나를 지키려면 그들로부터 나를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왔다고 해? 아니면 집에 있었다고 해? 뭐라고 말해?"

 

부모님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동생이 물었다. 나의 알리바이를 어떻게 구성하느냐고. 직장을 그만뒀다고 말하면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머릿속에서 생생히 그려졌다. 부모님의 걱정과 그때부터 쏟아질 간섭에 나를 잃게 될 것이다. 가족들이 출근해서 나 혼자 있는 시간. 지금은 나의 리듬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퇴근했다고 해. 어차피 예전에도 엄마보다 내가 먼저 퇴근하고 집에 왔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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