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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l 21. 2017

5. 죽음

자발적 백수

토할 것 같다. 너무 역겹다. 살아보겠다고 공기를 들이마시고 밥을 먹는 것이. 견딜 수가 없다. 저절로 죽는 상상이 된다.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내리거나 천장 형광등에 옷을 단단히 묶고 목을 맨다. 도로변에서 갑자기 차로 뛰어들거나 지하철이 지나갈 때 몸을 던진다. 죽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어떤 방법이든 매우 힘들고 아플 것 같긴 하다. 약삭빠르게도 갑자기 뿅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도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부모님과 동생이었다. 나를 만든 사람들과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자란 사람. 그들에게서 나의 존재를 지우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남겨진 이들이 느낄 고통을 생각하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 가장 큰 불효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래서 그랬던 거였다. 가족들을 먼저 죽이고 자살.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한 건 그런 맥락이었다. 심장, 폐, 간, 위, 각막, 연골, 혈관. 모든 신체 기관들이 헤쳐져서 공중분해 되길. 신장은 이미 주기로 결정한 것을 다른 장기라고 못 줄 게 뭐가 있나.


10년 동안 내 아버지는 신우염을 앓아왔다. 3년 전부터 만성신부전증으로 악화되어 온갖 치료법을 다 써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의사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얼른 선택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거라고 했다. 신장 장기이식 수술을 받거나 투석을 받거나. 본인은 투석이 죽어도 싫고 신장이식을 받아야겠다고 고집했다. 가족들 모두에게 난하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아버지와 나만 혈액형이 같았다. 적합 검사를 받기 전이었지만 이미 알 것 같았다.


"고맙다. 네 인생은 아빠가 평생 책임질게."


결정을 내린 날, 가족 단체 카톡방에 올라온 아버지의 메시지였다.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것인지. 본인이 죽을 때 나도 같이 관에 묻겠다는 뜻인가. 온갖 내적 외적 갈등 끝에 결정은 내렸지만 여전히 자신없었다. 신장 한쪽이 없는 상태로 남은 인생을 잘 살 자신이. 차라리 수술하다가 죽어버렸으면. 신장을 떼는 그 날 다른 신체 부위들도 모두 기증하고 죽었으면.


결국 아버지는 나에게 신장을 받지 (못)않으셨다. 작년 7월 초 투석을 시작했으니 벌써 1년째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일상은 두터운 우울과 죄책감, 죽음에 대한 공포로 짓눌려다. 나는 여전히 장기기증 희망자이고 아버지는 장기이식 대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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