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백수
지인이 별로 없다 보니 결혼식에 갈 일도 별로 없었다. 친척들과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선배 몇 명 외에는. 결혼 못하면 어떡하나 조바심 안 나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천하태평이었다. 결혼 한 사람 거의 없는데 뭘. 하지만 서른이 된 올해, 두 명의 친구가 결혼을 했다. 살뜰하게 안부 나누며 만나는 사이였는데도 결혼은 낯설고 갑작스러웠다.
청첩장을 준다고 만날 약속을 잡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혼식에 꼭 오라고 미리부터 덫을 놓는 느낌이랄까. 식사 장소로 잡은 곳의 메뉴와 가격을 검색해 봤는데 꽤나 비쌌다. 축의금을 얼마나 해야 하나 라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차라리 밥 안 얻어먹고 결혼식도 안 가고 싶다.
오지 말라고 그렇게 빌었지만 친구의 결혼식날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시댁, 친정 부모님들과 양가 친척들, 온갖 지인들이 전부 모인 결혼식. 멋있다, 예쁘다, 축하해, 행복하게 잘 살아. 웃음과 인사말이 넘치는 잔칫날. 그 어디에도 모두가 겪고 있는 결혼생활의 모순, 차가운 현실은 없고 오로지 '결혼은 행복'이라는 말로만 가득 차있었다.
정말 결혼이 행복인가? 결혼식에서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 약속하지만 그 약속을 지킨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극소수의 별종을 제외하고 인간이 과연 그럴 수 있기는 한 걸까? 배우자 외의 사람과 사랑, 성관계를 전혀 안 하고 평생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거의 없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인정하면서도 결혼제도 안에 들어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또한 많이 공평해졌다고는 해도 결혼 후 바뀌는 여성들의 지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며느리와 사위의 무게는 다르다. 사위는 대접을 받지만 며느리는 의무가 더 많다. 직장에서 유부녀와 유부남이 갖는 위상도 다르다. 여성 직원의 임신과 가정은 비용이고 남성 직원에게는 이익이다. 사회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는 해도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다.
얼굴 근육을 애써 만들며 친구에게 축하한다 말했다. 축의금 봉투에 내 솔직한 심정을 적은 편지를 동봉했기 때문에(이왕 결혼하게 됐으니 축하는 하나 너무 힘들면 이혼도 좋은 방법이라는 내용) '일단은' 축하해주었다. 복잡하고 심란했다.
백수로 지내는 어느 날, 친구가 집들이를 할 테니 놀러 오라고 했다. 축의금에 이어 집들이 선물까지?! 부아가 치밀었다. 애인도 없고 결혼할 생각도 없어서 평생 지인들에게 축의금이나 집들이 선물을 받을 일이 없겠다 싶은데, 나는 해줘야 한다니. 영양가 없는 말로 빙빙 돌리면서 약속을 회피했다.
잊고 지냈다 싶었는데 친구의 연락이 오자 화르륵 끓어올랐다. 이왕지사 한 결혼, 좋은 마음으로 축하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나는 왜 이리 못나게 굴고 있는가. 먼지들을 헤쳐보니 마알간 진짜 얼굴이 나타났다. 질투. 사실은 무지무지 부럽다. 주변 사람들에게 둘의 사랑을 인정받고 지지받고 축하받는 것. 사랑하는 이와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것. 함께 생활을 나누는 것. 정말 부럽다. 나는 평생을 가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나에게 오직 주어진 운명은 홀로 외롭게 늙어 고독사(孤獨死)하는 것뿐인 듯한데.
질투에 눈이 멀어 친구의 결혼을 비꼬았다. 나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지는 말아야겠다. 그렇지만 집들이는 가고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