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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l 26. 2017

8. 불확실

자발적 백수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다양한 면에서 예민한데 그중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특히 예민하다. 내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정도 불안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 아니야?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확실히 예민하긴 한 것 같다.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아 우울함에 허덕였던 시기들을 되짚어보면 이럴 때였다. 앞날이 불확실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나는 줄곧 삶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에 맞춰 행동을 다. 예수나 부처 같은 깨달은 자가 아니니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몰랐지만. 고생하다 보면 한시적으로 어떤 번쩍번쩍하는 가치를 발견하곤 했다. 가치가 뿜어내는 빛에 세상이 밝아지면서 계단이 보였다. 차근차근 오르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행복해서 열심히 나아갔다.


목표는 생애주기따라 바뀌었다. 고등학생 때는 심리상담사가 되어 다친 우리 가족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싶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UN에 들어가 자연생태계를 보호하고 싶었다. 사회초년생 때는 철학자가 되어야겠다 싶었다. 목표는 확실해 보이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과정을 밟아 갈수록 희미해졌다. 목표 자체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거나 뜬구름 잡았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기도 했다. 걷는 중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 목표가 아얘 보이지 않게 되는 일도 있었다.


목표가 보이지 않게 됐을 때의 느낌은 마치 길 한복판에서 엄마 손을 놓쳐 미아가 된 어린아이 할까. 미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심장이 덜컥하는 순간, 상황 파악이 안 돼서 눈을 꿈뻑꿈뻑하다가 뒤늦게 울음을 터뜨리는. 다시 엄마의 손을 잡기 전까지 안심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죽을 위험에 처했다고 느끼는 아이처럼. 삶이란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에 빠져 우울의 늪을 허우적거렸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왜 나는 이런 상태에 예민하게 굴지? 다른 이들도 똑같이 처한 현실인데. 어느 누구도 정해진 미래를 살지 않는데.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은 누구나 똑같은데. 왕, 귀족, 천민 등 계층 간 이동이 어려운 신분제 같은 사회에서는 일부 결정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인류가 시작된 이래 내가 왜 태어났는가를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살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많은 이들이 처한 상황이다. 다들 짐을 짊어지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데 나만 바닥에 주저앉아 무섭다고 울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힘들어하는 와중에 아버지의 건강 악화는 좋은 핑곗거리였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확 죽었으면. 가장 편한 방식의 해결방법. 그러나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삶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다. 혹여 신장이식 드리게 되더라도 그것이 삶을 포기할 타당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신장이식을 해드린다고 결정할 때는 그 후의 삶도 내가 책임지고 잘 살 것이라는, 아버지 탓을 하지 않고 온전히 잘 살 것이라는 강철 같은 다짐이 필요했.


먼 길을 돌아 돌아 걷고 있다. 여기가 어디인지, 무엇을 향해 가는지, 길가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 나만 이런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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