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문이 쾅
엄마의 심장이 쿵
위에 쓰여있는 두 줄의 문장은 아들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내가 느낀 심정을 표현한 글이다. 말 그대로 대화를 마치기도 전에 '알았어요'라는 말과 함께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상황의 모습이다. 그때의 심정을 글로 저장해 두었다가 후일 태풍이 지나갔을 때 아들에게 보여주면서 어떤 상황인지 그림이 그려지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아들이 '응 이거 나 사춘기 때 모습 아니야?, 그러게 내가 왜 그랬을까? 엄마 속상했겠다' 라면서 능청스럽게 대답을 했다.
갑자기 이 짧은 두줄이 생각이 난 이유는 9살, 7살, 5살의 아이를 기르고 있는 막내 동생의 방문이 있고 나서였다. 대화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완벽주의자 엄마와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내용이었다. 친구들과 놀고 싶었던 아이들이 엄마 몰래 놀이터에 갔다가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러던 중에 아이들 셋이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걸 본 엄마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이게 무슨 행동이야?' 하고 문을 열었는데 하필 아이들이 '엄마 싫어'라고 말하는 걸 듣게 되었다고 했다. 서운한 감정이 든 엄마는 밤새 울었다는 그런 슬픈 이야기였다.
어떤 모습일지 육아중이거나 육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대충 그림이 그려질것이다. 엄마들끼리도 모이면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속상하다는 말을 한번쯤은 꼭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집은 어떻게 하냐며 그애 대한 현명한 답을 얻기를 기대한다. 그 무렵에는 아이 키우는게 쉽지 않다는 말을 너도 나도 돌림노래처럼 하게 되는게 현실이다. 나도 조금은 그랬었으니까. 그런데 조금이라니 무슨 말을 꺼내려고 조금이라고 했을까?
사실은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아이들의 육아와 사춘기를 무난하게 보냈다. 가끔 조금이라고 표현했던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 지들끼리 알아서 잘 컸다고 말할 정도이니 육아에 대한 조언과 다른 설명은 뒤따를 수가 없다. 주변에서 '언니는 어땠어요?'라고 물어보면 나때는 말이야 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얼마든지 들어주기'에 강한 나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속상한 마음을 두서없이 풀어 놓다가 어느 정도 되면 반짝 하고 눈빛이 변할때가 있다.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들어줘서 고마워요' 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막냇동생에도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편하게 하라고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속내를 한참 풀어내던 막냇동생의 '그래도 말하고 나니까 속이 좀 풀리네'라는 말에 조금 짠한 마음도 들었다. 진한 커피를 내주면서 육아에 대한 조언보다 아이들 엄마 마음을 잘 다독여주라는 말을 해줬다. 아이들은 지들끼리 뭉칠 수 있지만 엄마는 그런 모습에 소외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내가 아이들과 조금 부대끼면서 알아간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각 가정마다 정답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의 방식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한들 아이들에게는 쓰고 맛없는 감정들로 느껴질 수 있다. 달달한 웃음이 저절로 나오려면 아이들에게 묻고 함께 풀어내면서 서로가 원하는 답을 조율해야 한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비슷한 상황이어도 감정은 다 다르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육아의 과정에서 완벽한 평행선이 될거라는 기대는 조금 내려놓는것도 하나의 방법일수도 있다.
이런 의례적인 말을 진지하게 듣는 막냇동생과 지금도 아이들과 씨름 중일 올케한테는 미안했지만 조카들의 반란이 너무 귀엽게만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을지 세명의 개구쟁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 버린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어서 그런지 나는 세명의 어린 친구들이 마냥 예쁘기만 하다.
아이들의 작당에는 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지 엄마 아빠를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훈육에 예민한 엄마는 '엄마 싫어'라고 아이들이 던진 폭탄에 맞아서 여기저기 구멍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 같아 두렵고 외롭고 서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상처도 지나고 보면 아이들로 인해서 메워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조용하디 조용한 우리 집에는 이렇듯 시시 때때마다 배달되어오는 조카들의 이야기가 반가울 따름이다. 곧 시작될 여름에 아이들도 올케도 막냇동생도 지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모두를 향해 응원을 보낸다. 뭐 내가 이런 응원을 보낸다 한들 아이들은 지치지 않겠지만 아무튼 나는 조카들의 귀여운 반란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