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내버려 둬 주세요.
내 몸이 왜 이러지?
요 며칠 나에게는 날이 덥다고 말하는 말의 온도마저 덥게 느껴졌던 날들이었다. 식은땀은 기본이고,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면서 당황스러워하는 나의 기분을 계속 톡톡 건드렸다. 이것이 여기저기서 듣던 갱년기 증상인가 보구나 하면서도, 내 마음에 다스려야 하는 감정 하나가 더 느는 것인가 하는 언짢음이 저기 어딘가에서 고개를 불쑥불쑥 내밀었다.
그 증상은 나의 모든 주변을 잠식해 버렸고, 덩달아서 내 몸과 마음이 비좁아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던 자리도 그만큼 줄어들기 시작했다. 평소 내가 조금 더 내주던 일들도 다 귀찮다는 말로 묶어서 마음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그 과정에서 감정 배달을 신중하게 잘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어에 추웠다 더웠다 하는 온도가 고스란히 담겨서 전달이 돼버리고 말았다.
명함도 내밀지 마
감정의 배달사고가 행여 일어날까, 갱년기 카페에 가입해서 먼저 겪은 선배들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모든 내용 하나하나가 짠내가 그득그득 담겨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갓 입사한 사회에 초년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많은 내용 중 눈에 확 들어온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단연코 감정조절과 불면증이란 단어였다.
불면증은 전부터 나의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감정조절의 불균형이란 단어에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 친구들과 만나면 모두들 갱년기와 진한 연애 중이라고 말하면서 너무 일방적인 구애는 재미없다고 웃으면서 말을 한다. 감정이 마음과 따로 놀아서 식구들과 대화에서도 말이 자꾸 튀었다가 고꾸라지기를 반복 중이란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너 왜 그래 이상하네, 아이들은 엄마 왜 그래라는 말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다가 결국 그래 나 갱년기다 어쩔래, 너희들이 갱년기가 뭔지 알기나 하냐? 하면서 자리를 뜨게 된다고 했다.
물론 그 뒤의 상황 수습은 다 귀찮다 로 마무리되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 상황을 어찌 하나하나 그때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는지. 방송에서도 갱년기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보이지만 그 화면 속에 여성들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비치고는 한다. 서로 이해와 관심이라는 연결고리를 찾아 내려는 방향성을 갖추어 마무리되지만, 가족도 당사자도 당황스러움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제가요 갱년기랍니다
나 역시 갱년기를 처음 접한 게 드라마 속 화내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었고,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의 갱년기조차도 내가 엄마라는 새로운 문에 도착했을 때 마주했던 다양한 감정들 속에서 학습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나는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희석해가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지만 엄마 세대들은 그 위태 위태한 다리를 어떻게 건너고 견뎠을까. 하는 생각과 그 다리를 나는 어떻게 건너야 할는지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밤 시간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만들었다.
지금도 나의 몸은 계속 덥다고 했다가 춥다고 하고 선풍기 내놔, 두꺼운 옷 내놔 하면서 온종일 아우성중이다. 이런 모습에 남편은 혹시 코로나 아니냐며 걱정스러워하길래 키트로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그런데 다행이라는 생각에 잠깐 방심한 사이에 '아들 회사 다니는데 엄마 코로나 걸리면 큰일이지'라는 말을 남편 앞에서 하고 말았다. 요즈음 아들과 애정도 경쟁 중인 남편이 '저기요. 남편도 회사 다니거든요'라고 말하는 눈에 서운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차차. 얼른 미안하다고 말하고 아들과 남편에게 "저기요. 제가 여기 두 분께 전달사항이 있는데요. 제가요 갱년기랍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학습이 필요하므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더라도 저의 안내를 숙지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이다.
갱년기의 입장을 허하노라
그리고 갱년기에게도 마음 표현을 했다. 갱년기와 거리두기를 할 수 없으니 갱년기의 입장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나도 갱년기에게 절박한 바람이 있다. 너무 요란한 입장 말고 되도록 조용하게 입장을 해주기를 바란다. 나의 갱년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