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러 지방으로 모임을 다녀왔다. 친구들이 전국에 흩어져 살아서 항상 중간지점에서 만나고 있다. 내 머리색을 보고 쏟아질 질문에 맑았던 기분이 흐려졌지만 그래도 가고자 하는 이유는 버스터미널 옆에 갤러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다르게 코로나 19로 개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과 출입문을 감고 있는 쇠사슬의 차가움만이 나를 맞이했다. 무언가 아쉬웠지만, 발길을 돌려 약속 장소로 향했다. 하나둘씩 모습을 보이는 친구들이 나를 보자마자 '아니 너 머리가?'라는 돌림노래가 이어졌다. 예상대로다. 오늘도 역시 흰머리가 나의 안부를 가로채버린다. 나는 염색은 멈췄으며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기승전결 형식으로 얼른 상황을 정리를 해버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임의 주제가 친목인 건지 아니면 내 흰머리인 건지 모를 정도로 염색에 대한 돌림노래로 가득하다.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을 하자 '그럴 나이는 아니지? 아직 젊은데 그런 나이는 아닌 것 같아' 그리고는 '너의 남편은? 아이들은? 시부모님은? 다른 사람들은 뭐라는데?' 친구들의 말들이 온종일 방울 소리처럼 요란하게 울려댔다. 당사자는 나인데 다른 사람들의 말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이던가? 걱정이든 뭐든 그 안에 들어있는 학습된 시선은 모두 한결같다. 나는 모든 것은 경험해 봐야 말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럴나이, 그런나이는 도대체 몇살을 말하는걸까?
흰머리에 대한 융단폭격을 온몸으로 방어를 한 탓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그런 나를 보고 바람 빠진 풍선 같다며 괜찮으냐고 남편이 물어왔다. 나는 “여보 사람들이 나는 안 보고 흰머리만 봐, 혹시 당신도 불편하면 염색을 할게.”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 소리에 당황한 남편이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하니?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아직도 나를 모르는 거야?”라며 나를 조금은 흰머리 지옥에서 탈출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