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장 수집가 Apr 24. 2024

흰머리 파이팅이란다.

2021년ㅡ에피소드

사회생활도 멈추고 염색도 멈추고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로 또 다른 일상도 멈췄버렸다. 어찌보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 할 수 있어서 다행스러운 점도 있었다. 굳이 멀어지려고 애쓰지 않았지만 사람들 또한 코로나의 혼란에 적응하느라 그들의 주소록에서 나는 저절로 잊혀져 갔다. 서로 잊혀지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몸과 마음의 여백을 마련하는데 활용했다.


코로나로 행동반경에 제약이 따랐지만 그렇게 마련된 틈은 나를 또 다른 비상구로 이끌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평소 용기가 없어서 그 주위를 맴돌기만 하고 프로그램 신청 버튼을 끝내 누르지 못했던 나였다. 나에게는 너무나 먼 영역이라고 느껴서 메모장에 아쉬움만 끄적거리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과는 달리 잉여의 시간을 떠돌던 몸은 자발적으로 검색의 노예가 되어있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면에 '신청되었습니다'라는 안내 메세지가 떠 있었다. 마음속 깊은곳에 저장해두었던 그곳,  12주 온라인 글쓰기 수업속으로 마침내 입성을 한것이다.   


걱정과 근심 기대를 안고 시작된 수업은 같은 연령대의 참여자가 많아서인지 사용되는 언어들이 낮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매주마다 과제가 주어졌지만 참여자들은 한명도 빠지지 않고 본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글로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느린 걸음이지만 나도 열심히 그들의 뒤를 따라갔고 글이 늘어나는만큼 그동안 타인들의 말로 쌓였던 불편한 감정들이 서서히 분해되었다.


무엇보다도 손가락 끝에서 태어난 이야기들로 하나 둘씩 지면이 채워지는것도 신기했으며, 이렇게나 많은 흰머리 에피소드가 있다는 것도, 작심삼일 중독자였던 나를 종강까지 이끌었다는 것이 제일 신기한 일이었다. 그 신기함속에서 기분이 나쁘면 나쁜대로 기분이 좋으면 좋은대로 썼던 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열심히 활약을 하기 시작했다. 과제를 제출할때마다 단톡방에서는 나의 글을 향해서 ‘좋아요, 재미있어요, 엄지척, 짱’등의 반응이 이어졌고 다음 글이 기다려진다는 말들로 채워져 갔다. 흰머리라는 존재는 마음을 늘 소란하게 하는 존재였는데 글쓰기 수업에서는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존재로 바뀌어 갔다. 마주하기 싫었던 이야기였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분위기에 정작 나는 이게 무슨 반응이지? 라는 물음표가 마음을 가득 메웠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의 기대가 즐거워서였을까? 12주동안 진행되었던 수업은 휙 소리와 함께 끝이 나버려서 아쉬움마져 들었다. 종강하던날 계속 글쓰기를 이어나가라고 격려해주던 선생님은 나에게'특히 000님은 멈추지 마세요'라는 말을 몇번이나 해주었다. 나역시 흰머리로 겪었던 에피소드로 글을 저장중이고, 그 이야기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고 대답을 했다.


나의 말이 끝나자 마자 화면속에서 다들 나를 보고 한마디씩 했는데,


글쎄 흰머리 파이팅이란다.
그리고 흰머리 짱,
흰머리 짱,짱,짱 이래나 뭐래나.
아니 흰머리 파이팅이라니
그보다도 흰머리 말고 나를 파이팅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하긴 내 친구들도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웃음기가 잔뜩 묻은 위로를 해줬던것 같다. 내가 너무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서 그런거래나 뭐래나.. 절반은 나의 책임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곤 했다.


그래...반대로 생각해보니까 사람들 화이팅을 외치는 그 순간은 당황스러웠지흰머리 덕분에 나는 힘도 안들이고 짱을 받은 것이었다. 남들은 한번도 어려운 짱을 그것도 세번이나 짱을 받았다.


그래도 이 상황이 웃픈건 순전히 나만의 사정이겠지.  


이전 12화 의문의 2연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