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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Apr 29. 2024

나 때문에 보태지는 화젯거리

되풀이되는 화제ㅡ2021

나 때문에 보태지는 화젯거리는 이유 불문, 장소 불문으로 생겨났다. 심지어 아버지를 떠나보내던 장례식장조차 예외는 발생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버지와의 생이별로 휘청거리는 나보다 흰머리가 먼저 조문객을 맞이했다. 되도록 화제가 보태지지 않게 이리저리 피해도 봤지만 사람들과 술래잡기에서 지는 쪽은  항상나였다.


장례식장의 안에서도, 밖에서도 '머리가 왜 그래'라는 질문에 답하느라 나의 주변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살아생전 딸의 흰머리가 길어진 가난탓이라고 마음 아파하던 아버지였는데 지금 이런 상황을 보신다면 얼마나 속이 시끄러우셨을까? 정말 나의 불효는 끝이 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나의 불효는 여기서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입원했던 병원에서도 그랬다. 어디를 가도 자석처럼 따라붙었던 에피소드는 병원까지도 따라왔다. 병실에서도 진료실에서도 검사실에서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지보다 더 하얀 머리를 하고 병상을 지키는 동안에도 많은 눈동자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놔두지 않았다.


매번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에는 애통함이 묻어있었다. 입원 기간 동안 서로를 바라보던 아버지와 나의 시선에는 공통적으로 애잔함이 묻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며 나를 토닥이는 버지의 깊은 눈 속을 바라보던 그때 딱 한번 염색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흔들렸던 것 같다. 아버지 곁을 지키던 몇 달 동안 진짜 괴로움과 진짜 미안함이 나를 가득 채워갔다.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 머리에 새로 생긴 흰머리의 원인은 백 퍼센트 나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병상을 지킨 것도 나였고,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킨 것도 나였는데, 나의 흰머리가 가난 탓이라고 속상해하던 아버지의 마음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병원에서도 그랬고 장례식장에서도 그랬다. 나 때문에 보태지는 화젯거리 때문에 장례식장에서도 아버지 속을 시끄럽게 해드리고 말았다.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를 애도하는 자리인데 저 때문에 아버지 떠나시는 길이 더 소란스러워졌네요. 소란을 몰고 다니는 이런 딸이 걱정되시겠지만 아버지가 심어주신 온기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흰머리로 잘 살아남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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