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장 수집가 May 13. 2024

할머니 엘레베이터 타고 가면 안돼요?

2023년

왜 그런 말이 있잖은가. 다들 내 인생을 소설을 쓰면 몇 권은 될 거라는 그런 말들 말이다.     

 

나는 소설까지는 아니지만 흰머리로 인해 발생되는 에피소드를 쓰자면 노트 몇 권은 될 것 같다. 그중 가장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할머니’가 아닐까 싶다. 마스크를 써서 그런가 보다 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흰머리라고 해서 다 할머니는 아닌데 누군가 할머니 하고 부르면 반사적으로 돌아볼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날 또한 그랬다. 아파트 현관을 들어섰는데 엘리베이터 안에 어린아이가 나를 보고 얼른 오라고 손짓을 보내왔다. 나는 너 혼자 올라가도 된다고 말하면서 2층인 집을 향해서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 몇 층 사시는데요?”
“응? 뭐라고? 나 말이니?”      


순간, 아이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할머니가 아니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고, 2층이라 계단을 이용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엘리베이터 문 닫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돌아보니까 그 아이가 계속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얼른 올라가라고 손짓을 보냈고, 그렇게 그날의 일은 잊히고 있을 무렵이었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던 어느 날 그 아이랑 또 마주치고 말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엘리베이터 문을 닫지 않고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등에서부터 느겨져왔다.


나는 그전과 똑같이 2층에 산다고 말하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걱정이 가득 묻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다리 아프잖아요.
우리 할머니는 엘리베이터 타고 다닌단 말이에요.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면 안 돼요? 네?”    

 

몇 초 동안이었지만 나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단어들을 고르느라 지진이 났다. 할머니 아니라고 할까. 아니면 내 다리 튼튼하다고 걱정 말라고 해야 할까 했지만 결국은 서로의 평화를 위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얘야.  다리 튼튼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걱정해 줘서 정말 고맙구나.”라는 말을 마치고 이번엔 내가 아이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지를 확인했다.   

   

생각해 보면 유전인 나의 흰머리를 가지고 콩나라 팥나라  참견하는 사람들 보다는 오히려 아이의 걱정이 나의 흰머리를 지지해 주는 편에 가깝다.


 이로서 흰머리 에피소드 한 편이 또 탄생을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진심이 가득 들은 그 아이의 말 덕분에 나의 흰머리와 더욱 친밀감이 생긴 것 같다.      


이런 몽글몽글한 감정에 둥둥 떠나니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이런 말이 들려온다.


할머니 진짜 2층 사시는거 맞아요? 
진짜인지 확인하려고요..^^


이전 20화 할머니 호떡은 직접 담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