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친지 모임에 다녀오는 날이면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일까? 라는 물음표가 계속 생겨났다.
시어머님의 생일이었던 그날, 축하의 덕담으로 충분했을 그날, 그런 분위기가 시들해졌을 무렵 누군가의 한마디로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그 대상이 내가 될줄은 정말 몰랐는데 시어머니보다 더 흰머리를 하고 왔다는 이유로 어느새 나는 두손을 공손히 모은채 벌을 서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누군가가 '모자라도 쓰고 오지 그랬니'라고 했다.
늘 그랬지만 가까운 친척을 포함해서 사돈의 팔촌까지 나의 흰머리를 보고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 해 라면서 정해진 규칙처럼 말을 하곤 했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염색을 하지 않은 것이 며느리 본분에 어긋나는 일이라는것을 그날 새로이 알게 된 날이었다.
대체 우리 엄마한테 왜 그러냐고 아이들이 그 누군가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러게 네 엄마가 조금 신경쓰고 나왔으면 이럴일도 없었잔아' 라는 말마져 들어야 했다. 아...정말 가족이라는 무례함으로 무장한 그들의 눈에는 속상해하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가보다.
불편함과 무례함속에서 이리 저리 흔들렸던 그 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속상해 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아이들은 사과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엄마가 왜 사과를 하냐면서 사과하지말라고 하면서 오히려 나를 다독여줬다. 그러면서도 모자를 쓰고 오라니 그런 말이 어딨냐며, 모자라도 사주면서 그런 말을 해야 하는거 아니냐 말하는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하루였다.
결혼이라는 제도속에서 가라앉는 나를 매번 나를 건져올리는 것도 아이들이었고 마음에 박힌 가시를 빼내주는 것도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설치해논장애물에 걸려 넘어져서 아파하는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던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리집은 늘 나만 모르는 엄마 기살려주기 프로젝트가 있다. 흰머리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겪는 엄마 마음을 다독여주면서 수시로 아이들은 엄마 기살려주기 프로젝트를 진행을 한다. 그날 역시도 흰머리 때문에 웅크러져 있는 나의 기분을 용케도 알아차리고 슬금 슬금 나에게 다가와서 무언가를 쓱 내민다
"엄마 있잖아...엄마는 달마시안 같어.달마시안 알지?. 그 달마시안이 얼마나 귀여운지 잘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