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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현수 Jul 11. 2024

숲이여

좁디좁은 터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것만이 내가 가진 전부라서    

벌레 먹은 잎에 죽을 듯 아파하고

스쳐가는 햇볕 바지자락을 잡고

아등바등 온기를 동냥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외면은 그럴 듯하게 보여  

사람들은 온전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유년시절의 벌레 먹은 잎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잎마저 썩어가는 내면은

아직도 한 그루의 나무에 매달리는

비루한 터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난 언제나 아슬하였고

조그만 일에도 큰 바람을 맞은 듯

뿌리째 흔들리는 나무를 부여잡으며

차안과 피안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 내 안에 냉기가 심해져

날숨마저 얼어붙어

나무의 뿌리까지 썩어가려 할 때

저 멀리 짙은 녹음(綠陰)으로 가득한

숲을 보았다.  

숲에도 바람은 불었지만

바람이 지나치게 길을 터주었고     

햇볕이 비추지 않은 때에는

올 거라 믿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 나는 왜 숲이 되지 못하였나

내 안에 나무를 늘리지 않고

조그만 바람에도 작은 썩힘에도

이다지도 아파했던가...


숲이여, 이제라도 내 안에 너를 만들려 한다.

너를 내 안에 이루려는 건

삶을 선택한 나의 간절한 숙명이니

나의 때 없는 슬픔을 갉아먹으며

짙은 녹음(綠陰)을 내게 드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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